화려한 궁으로~~
작성자명 [정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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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08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누가복음 1:5~7)
누가복음이 시작되는 첫날에~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대장정의 15년동안의 한 곳에서 머물렀던 고인 강물이 뚫려서 흘러가기시작한 첫날~
새해 일월 일일 이사가는 집에서 시작하라 하신다.
사백만원에서 이천삼백만원 집으로 가는 부담감과 설레임으로
전날 12월 31일은 이사할 그 집에 가서 구석 구석 먼지를 털고 청소를 시작한다.
너무나 추위에 시달렸기 때문에 방은 따뜻한지~
따뜻한 물은 잘 나오는지~
두렵고 긴장된 마음으로 집안 구석을 살펴본다.
일월 일일에 이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사팀 아저씨들이 하시는 말씀이 특별하다고 하시며
이 집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집에서 짐을 꾸리는날 유난스럽게 추운 삼일 동안의 그 일정의 한 날이 되어서
추운데에서 함께 이사짐 꾸리느라 강행군 함으로 목감기를 앓게 된다.
추운겨울에 이사를 가게 한 것은 무엇일까?
내내 따뜻했던 기온이 가장 추웠던 날 이사를 하게한 것은 무엇일까?
이사오기 전날에 보일러를 높게 올리고 갔기 때문에
이사가는날 문을 열어보니 방은 따뜻하고 온 구석 구석 안온한
온기가 춥고 시린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녹여주는 듯했다.
비록 반지하의 집이지만 이곳이 천국이고 이곳이 화려한 궁인 것을 뼈속으로 느끼게 된다.
춥지않은 다른 계절은 보낼 만 했지만 오직 겨울만큼은 그냥 뛰어 넘어갔으면 하는 바램
앉아 있어도 뭔가를 뒤집어 쓰고 있어야 했고 잠을 잘 때에도 밖으로 노출된 부분은
시려워서 팔과 손을 내놓고 잠을 자기 힘든 그집었다.
너무나 추운 날이면 밖에 화장실이 꽁꽁얼어 화장실 사용이 쉽지 않았고
또한 밖에 있는 세탁기는 얼어서 빨래를 탈수시키기 어려운 상태이어서
많은 빨래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아픔과 시린기억들을 어찌 쉽게 잊을 수가 있을까?
차가운 바람에 살을 에이는 추위에 양치질을 하기도 버거울 만큼
음식을 해서 먹고 싶은 생각은 아예 접는다.
15년을 방 한칸에 모든 살림이 다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다 보니 주변의 모든 공간은
책과 옷으로 둘러 쌓여 있고 방의 공간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좁혀진다.
집에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허허로운 벌판 광야에 서있는 듯하다.
숨이 조여지고~
마지막 아~ 길이 없고 방법이 없고 이렇게 하다가 죽어가는 구나~
엄마 아빠를 십년간 모시고 있을 때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이십대 초반에 허리가 아팠는데
그 이후로 허리에서 다리까지 아프기 시작해서 남보다 유난스럽게 추위를 많이 느끼고
추위를 이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밖에서 추위에 장시간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약한 것으로 훈련 시킨다고 했는데 너무나 잘아시는 주님이
가장약한 추위로 혹독하게 훈련하시는 손길임을 알게된다.
오직 이 모든 것이 이 땅을 사랑함에서 영혼구원의 애통함으로 부르는 주님의 초대에
음성에 촉각을 세우며 추위를 느낄 때마다 아픈 사람들의 구석 구석이 생각나며
그 아픔이 그대로 전해짐을 느끼며 체휼이 되어 지매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이사와서 또 다른 음성을 듣는다. 육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 춥고 시린 영혼들이 너무나 많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 부담감과 감동을 받게된다.
얼마나 나의 죄악이 강하고 질기면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렇게 하셨을까???
조금 추울 때는 영혼구원에 대한 애통함을 갖고 기도하고 주님앞에 부르짖지만
너무나 추울 때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진실로 이 추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다는게 무서운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사역을 하고 있었기에 가는 곳마다 소개해준 배우자감이 사역자이었기 때문에
내심 이 마음은 항상 사역자와 결혼하면 당연히 집은 주어지고~
혹은 조금후면 자신이 전임사역을 하면 집이 주어지기 때문에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시간과 세월을 소진한다.
그러나 주님은 속지 않으시고 이생의 야망과 아직도 생각으로의 음란을 끊지못함을
시간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통해 환경을 통해 책망하신다.
무엇보다도 아직도 내가 죄인인 것이 온전히 온몸에서 뿜어지지 않고
모범생기질의 의와 생색으로 일관된 면면들이 순간적으로 돌출될 때가 많다.
뭔가 드러나지 않으면 도태되고 게으른 자로 보여져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악을 발견한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춥고 시린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주님이 먼저 가 계신 그 곳에 갔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곳에 왜 진작 이곳에 불러 주지 않으셨나요~???
며칠간 계속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왜~ 왜~ 왜~ 이 질문을 드린다.
따뜻한 물과 따뜻한 방에서 십오년 동안 정체되었던 모든 살림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며
마침 직장을 그만두고 있었기에 아무리 정리해도 끝이 없는 정리작업을 하며
아~ 하나님이 이렇게 직장을 그만두게 하심도 이 때를 위함이라고 위로를 삼으며
정말 너무나 기다리는 그 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 주셨을 땐 기쁨이 절정을 이루고
기쁨에 취해 있을 터인데 너무나 기다림에 지친 오랜만에 따뜻한 곳으로의 응답이기에
강한 힘이 많이 빠지고 절제되고 제어된 기쁨과 흥분으로 환경에 취한 기쁨이 아니요
하나님께 취하는 기쁨인 것을 새롭게 발견한다.
불모의 땅에서 오직 인본주의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일관된 사고방식이
이런 혹독한 시린 추위가 없었으면 무슨 통로로 주님알 수 있었을까?
우려섞인 목장식구의 걱정아닌 걱정이~ 이제 따뜻한 집으로 옮겨져 나태해져 영혼구원의
애통함이 떨어지고 기도의 영성을 잃으면 어떻게 해요
주님은 분명히 나의 애굽으로 너무나 빨리 돌아갈 것을 미리 아시고 일년이 아닌 십오년의
시간들을 이렇게 훈련시키셨음인 것이다.
아직도 되었다함이 없고 자신이 없는 나의 모습~ 초마다 분마다 나의 죄인된 고백이 터져야 할 터인데 나의죄패를 달고 한 발 한 발 내 딛어야 할 터인데~
죄인된 고백보다 아직도 의롭고 성실한 나를 자랑하는 모습이 더 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겸손을 잃고 자칫하면 주위의 사람들을 지체들을 다치게 하는 약점을 지닌 아직도 나의 가시가 많이 있어서 푸근함으로 격려자가 되기 보다는 찌르는 자가 되고 있어서 주님 앞에 사람앞에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말씀하신다. 시므온과 안나처럼 세상이 주는 위로가 아닌 하늘의 위로 여호와 께로서 오는 위로만 바라고 있는지 물으신다.
분명히 주님 앞에서 대답한다. 가슴에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끼며~
아니요 하늘의 위로만 바라고 있는게 아니고 이땅의 위로를 얼마나 바라며 갈급해 하고 있는지 몰라요
주님 저는 이런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이런사람입니다~!!
믿음이 큰자라고 생각했는데 믿음이 형편없이 작은자 연약한 자 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런 사람인 것을 주님은 알고 있다고~!!!
나의 믿음의 실상을 알고 겸손할 수 밖에 없는 몸이 되어 이제 아기 예수를 잉태함으로
그 아이가 자라고 날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해 이땅의 부요함을 찬양함이 아니라
이 땅의 영광을 뵈옵기 전에 십자가를 환대하는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너무나 늦은 시점~ 지쳐있는 시점에 집을 허락 하신 주님~!!!
늙어서 경수가 끊어진 마른 태에 태의 문을 열어 입이 터지고 혀가 풀려서 주님을 찬양한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오랫시간동안 의와 경건으로 금식과 절제로 주님을 기다린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
처럼 나의 때가 아닌 주님의 때로 내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온몸을 다해 주님을 찬양
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라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누가복음 2:25~2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사년이라 이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누가복음 2: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