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이 땅에 새 날이 시작되던 날이 있었다. 그때를 성경에서는 태초라고 말씀한다. 그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혼돈의 세계였다. 어둠의 땅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깜깜한 밤이 된다. 한참 동안 숨을 죽이다가 이불을 벗었다. 혼돈의 세계를 벗자 환한 빛으로 충만해진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첫 마디가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 명령하셨다. 세상의 첫 창조가 빛이었다. 조금이라도 실감 있게 느껴보고 싶다.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었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다르지 않을 터인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생생한 빛줄기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겨울 차가운 공기가 살아있다는 자각이 얼굴에 닿는다. 환해진 세상이 눈앞에 걸어들어 왔다.
너의 내면은 어떠니? 물어 오신다.
‘빛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많이 망설이다가 대답하였다. 빛이 있긴 있는데 희미하다 못해 꺼질 듯 위태하기 때문이다. 다시 물어 오신다. 무슨 빛이냐? 멈칫거리다가 뻔뻔하게 외쳤다. ‘예수의 빛으로 충만합니다.’ 담대하게 대답했다. 주님을 처음 만나던 날, 어두웠던 나의 영혼에 불을 밝히던 첫 사랑의 현장이 기억났다. 나를 보면 아무것도 아니요. 죄로 인하여 고개 숙인 영혼이지만 주님을 바라본다. 다만 내가 외면하고 등을 돌렸을 뿐,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셨다. 다시 귀를 기울여 듣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경륜이 주님을 만나자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기적의 현장인 것이다. 혼돈으로 방황하는 나를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첫 목소리를 듣는다. ‘빛이 있으라.’ 새해가 밝아온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포한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말씀이 있으셨다. 태초보다 그 이전에 계신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그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곧 빛이 그 존재를 드러냈다. 창조의 시작이었다.
오늘도 말씀하신다. 인생의 어둠과 절망의 땅을 향하여 명령하신다.
장엄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아니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이 깃들여 있다. 말씀 한 마디에 혼돈의 세계가 정리된다. ‘빛이 있으라.’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절망과 혼돈의 땅에 사랑의 등불을 비추신다. 새해 첫 날, 믿음과 순종으로 새벽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