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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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08
눅 2:21~39
아침에,
며칠 전 딸을 시집 보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사위 자랑을 했습니다.
직장 든든하고,
외모 훤칠하고,
뭐든지 장모님인 자기와 의논한다고...
딸 아이가 공부를 잘 한다더니,
아마 그에 걸맞는 신랑감을 맞이했나 봅니다.
친정 엄마가 딸 시집보내는 애틋한 마음도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지금까지 딸 키운 보람을 느낄 정도로 사위가 엄청 위로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위로가 받고 싶습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좋겠고,
아들 부부가 잉태를 했으면 좋겠고,
딸 아이가 취직이 되거나, 믿음 좋은 신랑감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시는 방법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런 위로를 바랄 때 마다,
오히려 저의 죄를 보고 자복하게 하십니다.
내 편을 들어 달라고 기도드리면,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라고 하시고..
저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드리면,
오히려 저의 뜻을 굽히라고 하시고..
빨리 응답해 달라고 기도드리면,
오히려 아무 말씀 없으시고..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묵상할 때, 기도드릴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말씀으로 책망해 주시며,
저의 구원을 위한 이스라엘의 위로를 주십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것을 위로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이제는 세상적인 것을 바로 응답해 주셨을 때와는 틀린,
하나님 방법으로 위로해 주시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시므온과 안나를 묵상하며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받고 싶은 위로가 많았을텐데,
특히 안나는 과부로 84년을 살며 받고 싶은 위로가 더 많았을텐데...
그리고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을거라는 응답을 받을 정도로,
구원자가 오실 것만 기다리고 살았는데..
어떻게 그들은,
헹복이 목적이 아닌, 구원이 목적인 인생을,
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거룩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성경을 묵상하면 할 수록,
내 부족함이 보이고,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저도 시므온 처럼,
제 주위 사람들이 다 구원 받기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감사드립니다.
안나 처럼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공동체에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기도하며 금식하는 자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직 세상적으로 위로받고 싶은 것이 있는 저의 뜻을,
오늘도 저를 거룩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 앞에 내려 놓습니다.
하나님이 되셔서,
이 땅의 율법을 좇으신 것에 위로를 받습니다.
저의 패하고 흥하는 사건에서,
늘 하나님으로 위로받기 원합니다.
비방의 표적이 되는 사건이 와도,
칼이 마음을 찌르는 사건이 와도,
지금까지 위로해 주신 것 처럼 내 죄를 자복하며 위로받기 원합니다.
날마다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