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어머니, 어머니!!
작성자명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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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1.07
따르릉~~
3일 저녁, 친정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골다공증약을 드시고 밤새도록 토하고 누워계시니
내일 별 일이 없으면 와서 죽 좀 쑤어달라고 하신다.
친정아버님은 종가집 종손으로서 불신자이신데, 어머닌 30년 가까이 원불교 신자다.
그동안 영적으로도 통하지 않고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은 거의가 다 걱정과 불평이 많았기에
전화가 걸려오면 짐짓 짜증스런 맘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난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한 후, 다음 날 아침 전화를 드렸다.
그러잖아도 2월 말일 명퇴를 앞둔 시점에서의 방학인지라
연수의 부담도 없어서...그동안 부모님께 자주 말씀드렸었지만,
바쁘다고 미뤄왔던 부모님 모시기를 몇 일간, 여러 번 하며...
섬기며 본을 보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올 것이 왔구나! 느끼며...
주일 저녁 교회 다녀오는 길에 들르겠으니 짐 좀 싸 놓으시고
죽집에 가면 좀 비싸긴 하지만 전복죽 있으니 우선 좀 사다 드리라고 말씀드렸었다.
아~ 어머니!!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너무 막막하기만 했던 어머니!!
우리들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안되어 용기를 내어 한번 전하고는,
어머니가 다치시거나 아프시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구원의 편지도 써 보고
목사님 책도 드려보며..나름대로는 섬긴다고 걸어왔으나...
막내 딸의 권면에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도로 제 자리에 가 있는 어머니였다.
내가 한마디하면 원불교 얘기를 열마디하시며...
막내딸에게 자신의 신앙을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 깜깜 절벽을 느끼며
그저 아버지하나님만 부를 수 밖에 없었던 적이 한두번 이었던가!!
아~아~ 우리 어머니를 죽지 않을 만큼 돌려가며 치시는
아버지하나님의 사정을 헤아려보며 눈물지었던 날들이 몇 날이었던가!!
어머닌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10여년전 대장암 수술에, 급성황달에, 눈 망막 수술, 담석증 수술, 골절상, 늘 소화불량에 설사까지...아픈 곳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까지도 1996년 10월말에 잃었다.
큰오빠는 서울에 유학와서 초, 중, 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만 고집하는 시골 부모님의 막무가내로 몇 번 지원했다가 낙방한 후, 아버지가 군대를 방위로 빼서 집에서 지서(파출소)에 편안히 다니면서 마쳤다. 그 후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빈둥거리다가 필기도구만 가지고 전북대 법대에 시험을 치렀는데... 합격하여 7년이나 어린 막내여동생인 나와 나란히 입학을 했다.
졸업후 사시를 준비한다고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떠돌아 다니다가
결국은 폐인이 되어 음독자살하고 말았다.
이 후,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막내아들이 거주하는 안양으로 이사오셨다.
딸들의 강요에 못이겨 당시 막내며느리가 다니던 안양의 가까운 교회에 1~2개월 갔었으나
구역식구들이 어른대접하지 않고 거만하다는 이유로 도로 원불교로 돌아갔다.
어머닌 처녀적 잠시 교회에 가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고 말씀하셨었다.
종손자식이었던 가장 사랑하고 기대를 걸었던 큰아들을 가슴에 묻고
모진 세월을 다른 자식들에게 눈물 안보이며 살아왔던 어머니, 어머니!!
포기하고 싶었다.
너무나 성격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분명한 어머니였기에
다정히 다가가기가 겁이났었다.
그러나 우리들교회로 가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구원의 애통함은 커지고
말할 수 없는 영적인 부담감이 생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로하신 부모님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셨다.
자식이 6명이나 있었지만 어느 자식 하나 자기 집에 오시라고 하지도 않고
두분만 사시는데도 자주 찾아가 뵙지도 않자 너무 적적해 하셨다.
내가 교회에서 오는 길에 가끔 들러서 별 말씀 안드리고
그저 내가 부모님이 안계시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며...
어머니, 아버지 사랑한다고 하며, 바람도 쐴 겸 나와서 식사대접도 해드리고
정말 기회를 봐서 한마디씩 전하고 껴안아 드리고 얼굴을 만지며..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씀드리면 환하게 웃으시곤 했다.
그러면 생각지도 않게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했다.
“천국이 정말 있다냐~?”
난 반가움에 겨워 “랄랄라...랄랄라....랄랄랄랄...”
일사천리로 대답은 이어지고 중간 중간에 내 간증도 조금씩 하며...
아버지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드리곤 했었다.
그 어머니가..그랬던 어머니가...
어제 저녁 찾아가서 전북죽을 쑤어 드리고 식사를 하는데 말문을 여셨다.
“니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더만..그래서 내가 이렇게 계속 아픈 것 아니냐?
어제도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가습기에 찧어서 코가 이렇게 멍들었다..”
이어지는 나의 말...
랄랄라...랄랄라....랄랄랄랄...
그동안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기며 진솔하게 오픈하지 못했던
내 신앙의 여정을 3시간동안 말씀드리며
주님을 소개하며 원불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렸다.
아~어머닌, 약해져 있었다.
마음 문이 많이 열려있었다.
11시가 넘어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주님을 믿는데 방해하는 장애물은 뭐냐고 물었다.
“원불교사람들이 날 뭘로 보겠느냐?” 하신다.
어머니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안된다고 내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는데,
예수 안믿으면 망하는데 창조주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고...
우리 목장식구분들이 계속 부모님 상을 당하시는데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뭘까? 생각해봤다고...
내가 명퇴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더 이상 구원을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절박감에
외로운 부모님을 우리 집 가까이 모시고 성경말씀 얘기도 해드리고...
같이 모시고 교회도 다니고 싶어서라고 말씀드렸다.
봄이 되면 우리 집 옆으로 이사오시도록 추진하여 보자고...
지금은 병원도 가야 되고 해서 우리 집에 같이 안가신다니,
이번 주 금요일에 모시러 올테니까 우리집에서 좀 쉬시다가 우리들교회에 같이 가보자고...
막내딸이 그렇게 원하니 한번 가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러.자!!!!!!!!”(속으로 할렐루야!!교향곡이 마구 울려 퍼진다)
내친 김에 4번만 계속 연이어 가보자고 했다.
“왜 4번이냐, 한번만 가면 되지~”
우리 목사님이 항상 마지못해 오시는 분들께 4번만 와보시라고 하신다고 하니,
“그럼 4번 가보고도 아니면 내 맘대로 한다~” 하신다.
난 웃으며 덧붙인다.
어머니가 차멀미하고 다리도 절둑거려 창피하다고 하시는데 창피할 것 하나도 없다고
그런 걸로 업신여기는 사람도 없고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이므로 걱정하시지 말라고...
어머니 건강으로선 차를 오래 타시는 게 좀 무리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힘 주실거라고..
교회 가까이 15분거리에 둘째딸도 살고 있으니 예배드린 후 공서방이 그리로 모셔다 드리면
좀 쉬시고 주무시다가 마치고 우리가 모시러가겠다고..
둘째언니가 가까이에 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세팅이라고..
어머닌 말씀하신다. “넌 박사인갑~다!! 어떻게 모르는 게 없~냐!!”
늦게 집을 나서는데 어머닌 막내아들이 가져온 전복 한 개를 싸주며 “천국값이다~”하신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벅찬 감격을 나누며
오늘 매일 성경말씀이 뭐였지?
남편과 치동이에게 묻자 치동이가 읽는다.
눅1:67~71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켰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