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4
벧전2:11-25
오직 그 날 그 날 주어진 말씀을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끼는 요즘입니다.
내 기분과 감정이 괜찮을 때는 말씀을 조금 읽고 뭔가 큐티 글도 끼적여보지만, 감정이 급격히 다운되면 말씀을 봐도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이 그 말이 그 말 같네 하며 지나갑니다.
한마디로 저는 감정의 고삐에 매여 일생을 살아온 자입니다.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저는 한국 사람들한테 별로 나타나지 않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성향의 사람으로서 계획이나 분석, 계산과는 거리가 먼 성격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가장 비슷한 성향을 꼽으라면 감히 베드로 사도라고 봅니다.
말고의 귀를 베듯,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사건은 불같이 분노하며 인생에서 베어버렸고
고기를 잡다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듯, 새벽부터 저물 때까지 교회 일에 매진하기도 했고
사람이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듯, 눈앞의 사건에 매여 갈팡질팡하며 예수 없는 자처럼 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성향이 이렇다보니 죄를 너무 많이 짓고 살았는데, 문제는 죄가 죄인 줄을 분별하지 못했고, 누군가 그게 죄라 가르치면 오만 방자한 감정으로 분노하고 무시하기에 급급했던 겁니다.
지금도 역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맞습니다, 맞습니다, 아멘!을 하면서도, 설교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주여, 머리로는 아멘 하지만 가슴으로 안내려옵니다.’ 속으로 투정부리는 어리석은 감정기복 성향자로 살아가는 것이 제 현실입니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저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 목장 공동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주중 낮 목장에 속하기를 원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변한 것이 없다며 육체의 정욕대로 하고 싶을 때 제 감정과 성향대로 하지 않고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체들이 저같은 인간에게 꼭 필요합니다.
여전히 나를 위해 수고하는 그로와 결이에게 내 분노와 감정대로 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섬김으로 행하려면 날마다 지체들이 묻고 따져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 너무 외롭습니다. 취한 듯 잠이 들게 해주는 독한 약을 먹고 있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외롭다는 감정이 약을 이겨버리는 통에 밤잠을 설칩니다.
일을 시작하면 힘든 육체노동에 외로운 줄도 모르고 지쳐 잠이 들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잠깐의 외출만 하고 돌아와도 온 몸이 쑤시는 증상을 가진 제가 과연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한데,
사실 지난 몇 달간 목자님과 지체들에게 쉼 없이 징징거리기만 했던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 가슴을 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저분한 성격을 닮아 글 쓰는 스타일이 간결하지 못해, 큐티를 하는 내 스타일에 내가 질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카톡방이나 게시판에 나누기도 싫어서 지난 연휴에는 큐티 책을 펴지도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저는 구체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단계가 아니라 그저 징징거리며 더러운 속마음을 쏟아내기만 하는 연약한 인간이란 생각에 절망을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못난 성질에 비좁은 두뇌를 타고 났냐며!
우리들 공동체에 2년 3년을 붙어 있어도 계속 이 모양이면 어쩌냐며!!
오늘 말씀에 대한 적용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매일 새벽 큐티 설교를 듣고, 매일 목장 식구들에게 귀찮게 묻고 들으며 내 성향대로 살지 않고 말씀과 공동체의 분별을 받으며 살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이러다보면 저도 언젠가는 조금은 정리 된 큐티와, 분별하는 삶과, 조금은 더 순종하고 맡기는 믿음을 가지며 베드로 사도처럼 지체들을 권면하는 때가 오겠지요.
내 안에 먼지만한 믿음이지만, 그 믿음에 기대어 또 지겨워하실 큐티를 올립니다. 부디 읽으시는 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