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12-22)
저는 손 잡는 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걸으면서 손 잡으려고 하면, 친구들이 질색을 하고 도망을 했습니다. 연애할 때도 저는 팔장보다 손잡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무지 싫어합니다. 겨울이나 되야지 얼음손을 녹이려고 제 손을 잡습니다.
어제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뵈러 아내와 같이 갔습니다. 신정때 가족들이 모여서 구정때 외로우실 것 같아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가서 오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좋으셨나 봅니다. 집을 나올 때, ‘우리아들 손 좀 잡아 보자’고 하십니다. 그래서 손잡고, 제가 꼭 안아드렸습니다. 아니 제가 어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며느리도 꼭 안아주십니다.
오늘은 처갓집 세배를 갔는데, 장모님의 대접과 눈빛이 다르십니다. 수요오전 예배때 사위의 큐티나눔에 오셨다가 사위의 모습에 너무 놀라시고 은혜를 받으셨나 봅니다. 계속 그 이야기만 하십니다. 어깨를 두들겨 주시고, 집밖에까지 배웅을 해주십니다. 아들도 부목자가 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현까지 하십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도 가고, 시장도 가고, 교회도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그 손을 꼭 잡아 드려야 차를 타실 때나, 계단을 움직이실 때 불안하지 않습니다. 장모님의 손은 처가살이 13년동안 얼마나 저의 어깨를 안아주셨는지 모릅니다. 잘할 때는 더 잘하라고, 못할 때는 격려하시느라고... 그 손도 많이 주름이 지셨습니다. 아내의 손은 연애때는 정말로 가냘폈는데, 잠자리에서 간혹 잡아보는 지금의 손은 저보다 억센 느낌입니다. 치과일에 손마디가 굵어졌습니다. 저의 온기로 겨우 얼음손이 따뜻해집니다.
어제도 두천사가 롯의 집을 방문하여 왔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봉변당할 뻔한 롯을 손을 내밀어 집으로 끌어들여(10) 구합니다. 오늘도 마을에서 지체하는 롯과 아내와 딸의 손을 직접 잡아 이끌어냅니다(16). 손을 잡습니다.
손을 잡아 인도하는 천사들... 그 모습에 어머님과 장모님과 아내의 따뜻한 손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대표기도 직전 손을 잡고 기도해주시는 목사님의 따뜻한 손이 기억납니다.
롯과 같은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적용> 나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연락해보겠습니다. 아직 떠나지 못하고 미련이 남은 나의 소돔은 무엇인지... 욕심내어 연구 프로젝트를 계획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