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8:1
살아갈 수록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한 순간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기근이 있고 다툼도 생겨서 조카와
결별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거는 때도
있었으며 그로인해 큰 두려움에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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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 사건은 치명적입니다. 너무 바라던 아들이었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는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아마 믿음의 여정에 가장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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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느낄 때 말입니다. .
내가 더 사랑하는 것, 그것으로 인해 13년의 침묵 후에 하나님은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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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라고 말씀하시자 기꺼이 순종하면서 몸에 언약의 표징을
새겨 넣었던 아브라함은 역시 믿음의 조상 답습니다.
18장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아파트 문화는 점점 환대라는 개념을 소멸시켜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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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양상이지만,
성경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환대의 영성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이 뜨거운 때에 일손을 멈추고 오수를 즐기는
것이 통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가 바로 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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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음에 물 길러 나와 주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기를 꺼려한 여인이 그 뜨거운 시간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아브라함도 그 시간에 장막 문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쉬었을 것이나 어쩌면 선잠이 들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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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뜨거운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자신의 장막으로 찾아온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 설정을 아주 싫어합니다.
내가 죽을 맛인데 잠 잘 때 오는 카톡은 왕 짜증이 아닙니까,
진짜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소처럼 나그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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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대접을 했을뿐인데 그분은 여호와가 아닙니까,
내년 이맘때 사라가 임신을 한다고 하는 것과,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너무 관영해서 실사를 하시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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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절(나그네 대접하기)
-9-11절(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1-12절(웃음)
-13-15절(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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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적인 이유로 해서 징역을 살 참으로 칩거 하고 있는데 때마춰
초원지기를 대동한 목자께서 방문하였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반갑잖은 손님입니다. 전주 밥상 집에 점심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때 갑자기 복 바쳐 오는 설움인지 뭔지 아직도 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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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성이 남아 있다는 데 저도 놀랐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의 소통입니다. 확실히 믿음은 사변이나 내면화된
사유가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비록 저같은 고목이라고 할지라도 충격을 받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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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으로 골치 아픈 포천 아브라함에게 나그네를 보내신
하나님은 분명히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분이 맞습니다.
영적후사를 내지 못하는 사역은 사해바다가 될 수 밖에 없고
목장이라도 하려면 부부가 사랑 안에서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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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목장을 하려고 양육을 받다가 스스로도 가정이 온전치 못한 부분에
걸려 얼마 전에 포기했었는데 고운가루로 떡을 만들고
부산하게 애써야 하는 사람은 아내이기에 목자의 처방은 옳습니다.
사라같은 권찰도 아브라함같은 믿음의 조상도 없는 저도 목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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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목장 하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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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소돔 고모라 인 것을 깨닫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죄와 용서의 구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아버지의 뜻을 배운 후에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제게 성도의 교제를 위해 내 집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옵소서.
2014.1.28.tue.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