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7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 창세기 17:15-27
구십구 세와 백 세의 차이
창세기 17:17, 24: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 24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하란을 떠나 칠십오 세에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람이 아들을 주어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생각에 붙잡혀 마음 속으로 웃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꿔주시고 백세에 아들 이삭을 얻을 것을 약속하시자 드디어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며 그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구십구 세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에 정착한 지 이십사 년 만의 일입니다. 이 일은 아브라함이 잘나거나 옳게 행동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도 이럴진 데 믿음의 초보자인 저는 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라는 말씀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는 말씀이 꿀송이 처럼 달게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심각한 물질 고난에 빠져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목자·부목자수련회에서 어느 집사님께서 제게 다가와 제 두 손을 꼭 잡고 “요즘 많이 힘드시죠, 곧 회복되실 겁니다, 힘 내세요” 라고 두 번이나 말씀해주시는 데,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위로해주시는 말씀 같이 들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먼지같이 하찮은 저를 잊지 않으셔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고난을 주시고 상한 심령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큐티인 1월호 표지 #6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