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15
성경에는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 아브라함과 롯,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처럼 두 계열이 공존합니다. 21세기 중동은 전쟁과 테러로 바람 잘
날이 없는데 아랍과 이스라엘의 대립 국면은 “브헬라해로이”(창16:14)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두르다가 낳은 자식 이스마엘과 인내하면서 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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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서로 대립하면서 시작된 싸움(창21:16)은 이스마엘의 12방백과
야곱의 12지파로 이어져 갔고, 결국 오늘날 아랍과 이스라엘의 중동 분쟁까지
왔는데 우리는 결코 이 지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복을 누리고 살 것이라는
착각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얼마든지 악인과 편법의 자녀 이스마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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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창21:18)을 보여주면서 믿음의 후손들이 살아가야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사라의 후손(이삭)이 언약의 자손이기 때문에
결코 성도가 이스마엘과 화친 할 수는 없지만(창21:14), 그렇다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악마로 규정짓는 잘못된 이원론은 서슬 퍼런 십자군의 상흔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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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에서 보았듯이 우리들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니고 악의 세력을 그대로
두시면서 성도들의 새 창조를 이루어 가는데 사용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본시 자랑을 좋아하는 저의 조상은 유전자 검사를 안 해도 아담 맞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그도 나도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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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타락의 배경은 높아지기 위해서였고 어쩌면 인간들은 끊임없이 더
높아지고 더 이름을 내기 위해서 전쟁 같은 발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9.11이나 진주만에 나타난 가미가제는 영웅 심리의 표출이 아닙니까,
저는 새벽기도, 큐 티, 예배, 성경공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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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니 회당과 거리에서 유창하게 기도하고 금식할 때는
일부러 초췌한 얼굴을 했던 유대인들처럼 경건을 자랑꺼리로 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세상에서는 쨉도 안 되니 이 꼬락서니로 교회라도 와서
한번쯤 제 이름을 내고 높아져서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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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영-빨 있는 평신도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무엇보다 우리 딸네미들에게 아빠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고
가오를 잡고 싶었는데 일장춘몽이 되고 만 지금 낙이 없이 없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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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집안사람 중의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이행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할례를 통해 먹음직하고 보암직할 때마다
몸에 있는 표징인 할례를 보면서 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아흔 아홉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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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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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절(열국의 어미가 되리라)
-19절(약속의 자녀가 이삭임을 밝히심)
-20절(이스마엘에게 베푸신 은총)
-21-22절(약속 기산점)
-23-27절(할례를 이행하는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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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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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의 어미로서 내가 먼저 할레를 이행하게 하옵소서.
계속해서 잘못된 이원론 때문에 시온이즘과 9.11테러,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무수한 종교전쟁을 낳는 것을 보면서
바라기는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를 고쳐 주옵소서.
2014.1.27.mon.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