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 마저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_누가복음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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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에 대한 설교는 대부분 ‘순종에 따른 축복’으로 정형화 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베드로의 순종은 즉각적이지도 않았고, 기꺼운 순종도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5절의 ‘선생’이라는 호칭도 그러하지만, 단순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기 보다는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라는 사족을 단 정황으로 봐서 비아냥 수준이 아니었을 까 하는 추측이다.
베드로의 심리 변화를 추적하다 보면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들어 사용하시기 위해 요청하시는 중요한 비밀들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가나혼인 잔치가 있은 얼마 후 유월절 명절이 가까워 오자 예루살렘에 갈 계획을 세웠다. 단순히 유월절을 보내고 오는 일정이 아니었다. 몇 개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장기간의 여행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좇기로 내심 마음을 굳혔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선뜻 결정하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를 놓칠 수 없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따라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면서 이 정도뿐 아니라 더 큰 희생이라도 기꺼이 치를 것이라 다짐하였다. 어떻게 잡은 기회란 말인가!
그가 정말 구약에 예언된 참 그리스도라면 이까짓 희생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를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로마의 지배로부터 이 나라를 독립시키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여겨졌다. 또한 잘 하면 내게도 생각하지 못했던 횡재가 주어질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에게 확실히 신임을 얻기만 한다면 새로 독립될 조국에서 한 자리쯤은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도박을 걸어볼 만 했다. 그의 가르침은 다른 랍비나 소위 선지자 들 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달랐고, 특히 그를 통해 나타나는 기적들은 내 기대를 부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더욱이 단신인 예수에게는 누군가 절실히 도울 사람이 필요할 것이었다. 만약 그의 신분이 제사장 직책이라도 된다면 다가가기도 힘들 테지만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 자신의 직업인 어부나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 해 볼만 한 일이었다. 그의 곁에서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그를 도울 수 있는 일들이 있으리라 여겨졌다. 예수님을 휘감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베드로의 생각을 더욱 부추기고 확고하게 했다. 게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허무’란 병이 몰라보게 완화된 사실이었다.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배를 이웃에게 임대하면 하루에 두 사람 품삯 정도는 임대비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면 나와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머지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정에 동참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행동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옆에서 보기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격렬해졌다. 성전 뜰에 도착하자 마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상에 앉아 돈을 바꿔 주는 사람들*을 보고,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 사람들과 양과 소를 모두 성전 뜰에서 쫓아냈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고 상을 뒤집어 엎었다. 또, 어안이 벙벙해 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였다.
*당시에는 로마, 그리스, 유대 화폐가 유통되었으나 성전세는 유대화폐로만 납부해야 하므로 순례자들은 돈을 바꾸어야 했고 이 환전 과정에서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 성전세는 유대인 성인 남자가 성전 유지를 위해 매년 반 세겔씩 납부했다. (세겔은 유대의 화폐단위 중 하나로 은화 1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 품삯 정도에 해당)
예수님의 일정은 예정보다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제자들과 함 께 유대 지방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여러 기적을 베풀기도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론하였다. 갈릴리로 올라가는 중에도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며 말씀을 전했다. 그로 인하여 여정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몇 배나 더 길어졌다. 집안 일이 걱정되었지만 간간 여행자들을 통해 소식을 들을 뿐 어쩔 수 없었다. 중도에 일행에서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마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이는 꼭 늘어진 여정 때문은 아니었다.
뭔가 예수님의 조용한 혁명에 자신이 기여할 거리를 찾아 연신 그의 주위를 맴돌았지만 도대체 가 예수님을 도울 일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혼자 장소를 전해 말씀을 전했고, 귀신을 쫓았고, 병든 자를 치료했다. 어디로 갈지도 혼자 결정했고, 자고 먹는 것 조차 그가 개입할 여지가 없이 신기하게 미리미리 준비되고, 안배가 되었다. 기여할 일이 좀 있어야 나중에 요청할 근거가 있는데 그냥 따라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따라 나설 때는 예수님이 하는 말씀들을 잘 기억했다가 그가 피곤할 때 대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 깨달아졌다.
더구나 점점 그의 혁명방식에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뭔가를 이루어 갈려면 사람을 모으고, 조직을 구성해야 했지만, 그는 도대체 이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의 설교도 구체적으로 조국의 독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모호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마음을 짓눌렀다. 예수님을 이용해 혁명을 일으켜 조국을 독립시키고, 자신도 이 참에 출세 한번 해 보려는 생각이 흘러가는 뜬 구름 같이 여겨졌다. 그리고 허무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엇이 마음속에 스멀거렸다.
인생이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이상하게 꼬여 가는 것 같았다. 동생의 꼬드김에 세례요한을 보기 위해 따라 나서면서부터 말이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날 그 풀밭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 때 자신의 마음에 가득 들어 온 하늘과 구름이 계속 그를 따라 다녔다. 그리고 요단강 변의 움막 같은 거처에서 예수님을 만났었다. 그날 이후 자신 안의 하늘과 구름이 주인을 만난 듯 첫사랑과 같은 흥분이 지속되었다. 그 흥분이 이내 내 안의 야망과 손 잡고 예수님을 굳게 붙잡았다. 그런 후에는 생업조차 팽개치고 그를 따라 나설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그렇게 어느덧 8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아! 정녕 인생역전은 무리수였단 말인가? 집에 돌아오는 내 모습은 패잔병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엔 한 바닥의 상념이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장기간의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다 퀭한 눈까지 덧붙여 집에 돌아왔다. 이상했다. 계면쩍음 때문인지 자신의 집이 낯설었다. 곧이어 꿈에서 깨어난 듯 잊고 있었던 현실이 눈에 와락 들어왔다. 똘망똘망한 사내아이 둘은 오랜 만에 나타난 아빠에게 그 기간만큼의 반가움으로 매달렸다. 항상 남편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신뢰해 주었던 아내의 눈에 갈릴리 호수의 물빛을 닮은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내의 눈을 피해 다급하게 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에는 그간 방치되어 있던 그물이 자신의 눈에 걸린 눈물 마냥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도망치듯 그물을 잡아채고 황망하게 집밖으로 나왔다. 손에 들린 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그래. 이렇게 그물을 잡고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 바로 내 현실이다. 나라의 현실 이전에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다. 마치 그 분의 현실이 저렇게 혼자 하나님 나라를 말하며, 기적을 일으키고 다니시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예수님을 도울 방법도 물고기를 잡아 그에게 대접하는 것이 유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최소한 이 분야만큼은 내가 우위에 있음이 틀림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통해 그의 일을 돕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갔다. 다시 영락없는 어부가 되었고, 시간이 흐른 언제부터 인가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한 때의 아련한 추억 마냥 가물거렸다.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엔 잡히지 않은 쓰라림이 몽글댔다.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멍멍한 가슴을 안은 채 그물을 던졌다.
그런데 오늘은 참 이상했다. 고기잡이라면 이 바닥에서 공인된 솜씨였지만 계속 허탕만 쳤다. 이제 그만 그물을 거둬야할 시간이 되어서는 온 통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초조감이 밀려왔다. 모든 경험과 지식을 다 동원해 사력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집안 대대로 같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했지만, 이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자신도 이제껏 경험해 본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아무리 못 잡아도 보통 하룻밤에 한 광주리는 잡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물질을 쉰 탓은 결코 아니었다.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마치 고기들이 그가 그물 칠 곳을 미리 알고 피하기라도 하는 듯 했다. 그렇게 빈 그물만 거푸 들어 올리다가 결국 수초 나부랭이 만 물가에 부린 채 고기잡이를 마무리 했다.
극도의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옆에서 똑같이 빈 그물을 건져 올리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의 배가 아니었다면 미쳐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화를 참지 못하고 애매한 갈릴리 호수에 쇳소리까지 해댔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해야 황당함을 좀 면할 수 있을 까 싶었다. 같이 동행하였던 야고보와 요한도 이해하지 못할 황당함에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현실 이전에 자신을 극도로 짓눌렀던 것은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부터 계속되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의 실패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 자신을 안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스멀거리는 당혹감은 이미 굳어진 얼굴로도 감출 수 없었다.
‘고기잡이 마저도…’
동이 터 오면서 만물은 제 각각의 색을 찾아 활기를 띠고 있었고, 갈릴리 호수 조차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젯밤의 진실을 수면 밑으로 숨긴 채 평온 했다. 찹찹한 마음만 제외하면 아름답기까지 한 아침 풍경이다. 다만 눈물이 맺힌 것처럼 눈 앞이 어른어른 하다. 아침 물안개 때문일 꺼라 생각한다.
“내.. 참… 이럴 수가..”
그 때 위 쪽 등성이로부터 왁자지껄한 웅성거림이 들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맨 앞에 앞장서 있는 사람은 얼핏 보아도 낯익어 보였다. 아직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그가 바로 ‘예수’임을 쉽사리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곧장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왔다.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예수님께 목례를 하였다.
“예수님.. 이 시간에 여기엔 어떻게…”
딴짓하다 들킨 학생처럼 목소리가 면목없다. 꼭 대답을 들을 요량으로 물은 것도 아니었다. 새벽에 근처에서 산책을 하시던 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이라도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될 리 없었다. 그의 고향 나사렛에선 정작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배척을 당하였지만, 이 곳 가버나움 일대에선 사정이 달랐다.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밤낮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는데, 그 기세만 봐서는 흡사 빚쟁이가 빚을 받아 내기라도 하려는 듯 했다.
예수님은 나와 앞에 놓여있는 빈 배를 번갈아 주목하신 후 예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베드로 형제! 자네의 배를 좀 사용했으면 하네만..”
“예?”
엉뚱한 요청에 내 턱이 홀쭉하게 길어졌지만 이내 예수님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밀려드는 군중과 얼마간의 거리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배를 이용하실 생각임이 분명했다. 말씀을 전하실 때 간혹 예수님께 무작정 다가가 옷자락이라도 만지려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해 하시곤 했기 때문이다.
“예. 물론입니다. 예수님! 마침 빈 배입니다. 얼마든지 사용하세요”
마치 악몽과 같았던 어젯밤 일과 그 배가 아무 상관이라도 없는 듯 시침을 뚝 떼었다. 예수님을 태운 배의 닻을 조절하여 육지와 3~4미터의 거리를 두고 말씀을 전하실 수 있도록 하였다.
예수님을 태운 빈 배는 아침노을을 등에 업은 채 그의 말씀에 운치를 더해 갔다. 하지만, 정작 나는 어젯밤의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 예수님의 설교내용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물을 다듬고 있는 주눅든 손길이 베드로의 심정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에 움찔했다.
“베드로 형제! 다시 한번 그물을 던져 보게나!”
언제 설교를 마치셨는지 예수님이 자신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계셨다.
“예? 그물을 던지라고요?”
그는 거짓말하다 들킨 아이처럼 달아오르는 열기에 얼굴이 화끈거리기 까지 하였다. 예수님은 이미 지난밤의 참담한 실패를 꿰뚫고 있는 것 일까? 그리고 이 아침, 어부 인생 최대의 실패의 꼭대기에서 다시 한번 그 패배를 본인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네. 저쪽 편의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보게!”
온화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예수님의 위엄과 황당함이 누적된 나의 얼굴이 묘한 대조를 이를 것이었다. 그간 예수님의 말을 대놓고 거부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갑자기 마지막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또한 그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스스로 느꼈던 굴욕까지 되살아 났다. 예수님은 한번도 나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있었던 것 자체가 나에겐 굴욕이었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분명 다르다. 여기는 갈릴리 바다이고, 내 잔뼈가 굵은 텃밭이다. 최소한 고기 잡는 일에 예수님께서 훈수를 두실 입장은 아니었다.
비록 어젯밤의 상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갈릴리 호수의 상황을 확실히 알려 주어야 했다. 삐딱한 목소리로 예수님께 말했다.
“선생님! 아시다시피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고생을 하였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잡힐 만한 곳은 다 그물을 던져 봤습니다. 소용없습니다요.”
하지만 예수님의 온화한 표정은 다시 한번의 재촉보다도 더 완고했다.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마치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 하는 양 양팔을 벌리고 주위 사람들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휴~ 선생님이 그렇게 요청하시니 말씀대로 그물을 한번 내려 보겠습니다.” 말은 그랬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러분! 들으셨죠? 예수님이 그물을 저 깊은 데로 가서 던지랍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하.. 저분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주세요.’라는 뜻일 뿐이었다! 뭐, 손해 볼 것도 없었다. 어짜피 헛수고일 것이고, 나의 실패에 예수님을 동참시키는 것도 괜찮을 법 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지목한 그 깊은 곳은 수온이 차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곳이었다. 갈릴리 호수는 종종 ‘갈릴리 바다’라고도 불릴 만큼 그 크기가 웅장했기 때문에 때때로 마치 바다처럼 큰 파도가 일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담수호였고 상부의 헬몬산(해발 2,814m)의 눈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었다. 따라서 눈 녹은 물로 인해 수온이 차기 때문에 햇빛에 데워진 낮은 수역에 고기들이 주로 몰려 있기 마련이었다. 예수님의 요청은 동네 어린애들이라도 코웃음 칠 만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뭉개졌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라도 잡은 듯 다시 그물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얼마쯤 노를 저어가면서 예수님과 수신호로 위치를 잡고 그물을 힘껏 던졌다. 잠시 후 빈 그물을 올리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그물을 힘껏 걷어 올렸다. 순간 얼굴엔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턱.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바위에라도 걸린 듯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생명들의 무게가 그물을 타고 팔을 전율케 했다. 수많은 퍼뜩거림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급격한 충격에 휩싸였다. 옆의 배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야고보와 요한이 급히 노를 저어와 내 그물을 건네 받아 가까스로 건져 올렸다. 이어 야고보가 자신의 배에서 다시 한번 던진 그물에도 첫 번째만큼의 많은 양의 물고기가 끌어 올려졌다. 바라보고 있던 군중들은 하나 없이 놀라 환호를 연발하였다.
기적이었던 것이다. 한치의 부족함 없는 완벽한 기적이었다. 그 환호성의 정점에 갑자기 현기증이몰려왔다. 노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이 사건의 전말을 눈치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어젯밤부터 나의 고기 잡는 일에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먼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는 기적을 연출하였고, 이 아침에 많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영역까지 무너트려 버린 것이다. 순간 나의 들썩거리던 어깨가 격한 흐느낌으로 변했다.
“으. 흐흑…”
놀람과 기쁨으로 육지의 군중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은 내 흐느낌에 멈칫하였다. 그 들 또한 그제야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 챈 듯 금새 엄숙해졌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가득 싣고 두 척의 배가 뭍을 향해 천천히 다가 오고 있다. 아른거리는 눈물 사이로 따뜻한 불빛이 보인다. 여러 날 바다를 표류하던 배를 맞아 들이는 항구의 불빛 같았다. 그렇게 예수님이 서 있었다. 그의 눈물은 높고 크신 예수님 앞에 자신의 부정함과 연약함이, 그리고 세상욕망이 꼼짝없이 발각되어짐을 인함이었다. 땀에 베인 내 몸이 겉 옷 사이로 더욱 오그라들었다.
육지에 배가 닿자 나는 그대로 예수님의 발 앞에 털썩 꿇어 앉았다. 그리고는 목구멍에서 핏덩이라도 터져 나오는 듯 애끓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주님! 당신은 높고, 크신 분입니다. 반면 저.. 저는 벌레 같은 제 모습은.. 저는 너무 큰 죄인입니다. 감히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를 떠나주세요! 흑~흑.”
나의 몸부림은 흡사 발작처럼 처절했다. 그리고 고백은 끓는 용암처럼 격렬했다. 그것은 전 존재가 드려진 회개였다.
이어 마음속으로 예수님께 고백했다.
[예수님! 저의 마음을 잘 아시잖아요! 전 당신 곁에 있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간 주님을 속여 왔습니다. 사실.. 당신을 좇은 이유는 당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내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당신에게 헌신 한 만큼 되돌아 올 보상이었지요. 그래서 당신의 맘에 들기 위해, 관심을 끌기 위해, 당신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전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따라 다니면서 당신을 더욱 알게 될수록 제 생각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혼란스러웠어요. 제 바람과는 달리 저의 꿈에 대한 진전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의 열정도 다 사라져 버렸고요. 그리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품고 도망치듯 이곳에 와서 고기를 잡고 있었죠. 그런데… 결국 여기까지 찾아 오셨군요. 이런 저를.. 만나려… 이런 저를 다시 부르려… 주님!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그의 통곡은 낱낱이 완전한 말이 되어 예수님의 마음에 날아 들었다.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있던 예수님의 눈도 맑게 붉어졌다.
이어 예수님의 마음이 촉촉한 봄비 같이 베드로의 마음을 적셨다.
[베드로! 괜찮네. 오히려 그런 자네의 고백이 나를 기쁘게 하네. 자네와 같은 고백이 성도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하네. 주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자인 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지. 얼마나 큰 죄인인줄도 깨달아야 하네. 그러한 철저한 자기 부인을 통해서만이 나를 바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데 나를 따른 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이 펄펄 살아 있는 채 나를 돕겠다고 나서네. 그들의 구실은 하나같이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서이지. 자신이 소유한 돈으로, 명예로, 권력들로, 재능들로 말일세. 그들은 그렇게 헌신을 구실로 상급을 요구하며 나와 거래를 하려 하지. 요청이 순조롭게 들어지지 않으면 당장 그들 마음에서 주먹까지 들이대네. 그러한 헌신은 그 순간 상급을 자신이 가로채 버려서 내가 다시 되돌릴 여지가 없네. 오히려 훗날 자신이 나의 영광을 가로챈 것에 대해 책망 받을 일이네. 그들은 엄밀히 말해서 거래를 통해 얻을 이득을 사랑하는 자이지 나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네. 나는 성도들의 헌신의 양에 관계없이 그 마음의 순수한 동기를 받을 뿐이네. 그리고 그 순수한 동기를 통해 즉시 은혜라는 상급을 줄 것이네. 그리고 그 순수한 동기의 첫 시작은 바로 ‘자기부인’ 일세.]
[예수님! 부끄럽습니다. 제 마음 상태를 그대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 조급해 하지 말게나. 자네는 이제 그 첫발을 뗀 것이네. 그리고 최후의 완성의 지점을 향해 매일 지속적으로 전진해야 하는 과제가 자네에게 남아 있네. 미리 말하지만 그 길은 그리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라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자네와 동행할 것이네. 자네는 다만 지금까지의 자네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 놓고, 내가 자네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온전히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네. 자네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게바(반석)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을 기억하게나. 그것은 자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일세. 이제 함께 출발할 때이네. 일어나게나!’]
예수님의 눈빛이 그렇게 내 가슴에 말씀이 되어 용해 되었다. 그러자 중심의 고백이 고무나무의 상처에서 나오는 진액처럼 진한 눈물로 흘러 나왔다.
[예수님… 이런 저를 용납하시다니…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따르겠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통해, 눈빛과 눈빛을 통해 대화가 오간 후 최후의 결론을 말하는 재판관 같은 엄숙함과 근엄함으로 예수님이 입술을 열었다.
“자. 베드로… 이제 되었네. 이후로 자네는 물고기 대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빚어져 갈 것이네. 나를 따르게.”
갈릴리 바다에는 수많은 칼날들이 일렬로 배를 뒤집으며 멀리 떠오른 태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뒤에 버려진 배와 그물이 나의 껍데기인 양 스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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