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1-18)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
이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치과 의사인 제가 이비인후과를 전공한다고 할 때, 당연히 목(두경부외과)이나 코(비과)를 세부전공할 줄 알았는데 귀(이과)를 전공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의아합니다. 실은 저도 두경부악안면외과를 전공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외부에서 오는 제 동기 한명이 그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바람에 저의 스승이 저의 전공을 당신이 하시는 ‘귀’분야로 바꾸길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동료 한명이 연구를 시작할 때 적지 않은 도움을 제가 주었습니다. 연구 테마와 재료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후에 서로가 독립이 되어 각자의 체제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대학원생들이 우리가 하는 연구를 저쪽방에서도 비슷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자. 똑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다’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책임자로 있다 보니, 여러 갈등과 이해 관계를 중재해야 되고, 또 그 갈등속에 휘말리게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에서 배운 것이 ‘믿는 사람 내 손에 피를 뭍히면 안된다’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8)’ 였습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먼저 선택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랬더니 조용합니다. 거의 갈등이 없어 보입니다.
다 비슷해 보이는데, 꼭 모두 아브람의 선택 같아 보이는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니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앞의 두 경우는 당시에 평강이 전혀 없었습니다. 생색이 났습니다. 어떤 때는 억울함이 올라오고, 어떤 때는 분이 올라오기도 하고... 더 큰 보상으로 더 잘 해야 한다는 맘으로 저를 더 혹사하기도 했음이 깨달아집니다. 물많은 소돔, 요단 지역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롯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내려놓은 것’이 하나도 없이, 그저 선택의 양보만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쉬운데, 왜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 허탈 웃음이 지어집니다.
아내 팔아먹어서 얻은 불의한 소유로 다툼밖에 얻을 일이 없음을 깨달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 이제는 하나님이 축복의 약속(15-17)을 받고, 감사의 제단을 쌓는 것(18)이 당연해 보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문제였음을 깨닫습니다.
적용> 학회, 학교, 교회 일의 여러 결정에서 아직도 잘 안되는 ‘내려놓음’의 선택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