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작성자명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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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2.31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뭐가 그리도 궁금하였던지
대롱대롱 끝까지 매달려 나부껴대던 나뭇잎도
大地가 손짓하는 태고의 부름을 이길 수 없었던지 영원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정말로 나뭇잎 한 장 남아있지 않는 앙상한 나목(裸木)...
그 속으로 대륙의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은 겨울의 절정을 향하여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네플류도프 백작이 부활을 꿈꾸며 걸었을 시베리아 벌판을 생각하여 봅니다.
그에 비하면 베이징의 겨울은 견딜만 한 검다...^^
그치만 불어오는 북풍이
길다란 오리털 파카마저 얇은 포플린처럼 만들어버린 오늘같은 날씨라면
부활이란 단어보다 고향의 아랫목이 그립노라~~...^^
제 나이, 40이 되려면 아직도 1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사람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다 하시어
저는 20대부터 40되기를 많이 기다려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공자님은 너무 이상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큐티엠에서 인생의 선배들의 글들을 보노라면... 나는 의심쩍은 냄새를 킁킁 맡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자님 말씀이 왠말입니까!!!
마지막 한 장 남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사기와 함께
2007년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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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 전쟁을 일으킨 헬레네가 있었다면
이스라엘에는 레위인의 첩이 있었나 보다.
성경 통독 때 분명 읽고 넘어갔을 본문인데도 마치 처음 보는 듯한 사사기 마지막 기록들...
요셉지파의 아들인 베냐민 비류들이 이스라엘 레위인의 첩을 상관하고 달아나자
레위인은 죽은 첩의 시체를 열두조각내어 각 지파로 보내게 되고
이스라엘 형제지파들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베냐민 지파와 싸우게 된다.
전쟁은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나게 되는데 마치 트로이 목마처럼
매목병을 두어 베냐민 지파를 섬멸하게 된다.
그리고 싸움에서 남자들은 학살당하고
또 살아남은 남자들을 위해 여자들은 강제로 끌려 가게 된다. 고대 전쟁 이야기...
앞으로 전쟁을 일으킨 여인하면 이스라엘의 레위인의 첩도 꼭 기억이 될 듯 하다.
그러나 전쟁의 이름앞에 왜 여인들을 내세우는가?
주님께서 인류가 처한 심리학적 상태를 정의 해 주신 바
악하고 음란하다 하셨다 하였는가...!!
아..., 전쟁을 일으킨 이면에 있는 인간의 욕망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누구냐?
전쟁의 중심에 선 레위인과 트로이의 패리스 왕자...,
그리고 레위인의 첩과 헬레네를 생각하며
<음란>에 관하여 용감하게 직시해 보자.
모든 욕구들 중에서 특히 성적인 욕구는
분명 무언가 잘못되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욕구들은 충족이 되면 만족하게 되지만
성적인 욕구는 그렇지 않지 않는가?
무대의 막이 오르면
남실남실 떠오르는 따끈한 음식을 보여주는 쇼가 있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러나 스트립 쇼는 세계 대부분의 어느 나라를 가나 존재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준다.
c.s. 루이스 / 순전한 기독교(대충 인용)
현대인들은 그 이유를
성을 억압했기 때문에 점점 타락되어진 것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했지만(특히 프로이드)
루이스는 반대로 애시당초 뭔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는 쉬쉬해 온 것이라 하였다.
프로이드 이후,
현대인은 들어 내어놓고 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고
일찍부터 성교육을 시행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지 않느냐며 프로이드 이론에 반박한 것이다.
인간은... 왜 성적인 면에서 이런 타락을 겪고 있는 것일까?
아래의 것은 생리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한가지 설명이다.
남자는 자손을 낳아 널리 널리 퍼트리고자 하는 번식의 본능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바람을 많이 피우게 된다.
그러나 여자들은 다르다.
한번 자녀를 낳았으면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본능이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남자는 생리적 번식의 욕구로 다른 여자들을 쳐다보도록 되어있고
여자는 이미 낳은 자녀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안갖힘을 쓴다는 것이다.
여자가 더 지순하게 보이지만 실은 그렇다기 보다는
여성에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유전적 이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별로... 여성과 남성이 사이좋아지게 보일만한 여지는 없는 이론이다.
정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보충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인격적으로 지, 정, 의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지적인 사람은 정적이거나 의지적인 사람을
정적인 사람은 지적이거나 의지적인 사람을
의지적인 사람은 정적이거나 지적인 사람으로부터 보충받으려 하고 그렇게 짝을 이룬다.
그러나 결국 두사람이 만나도
세 가지가 온전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모자란 한 부분을 찾아 또 방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람피우는 남성들이 선택하는 여성을 보면
자신의 아내와는 상당히 다른 유형의 여성을 선택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아내가 고상하다면 다른 여인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아내가 말많은 여자라면 남편들은 조용하고 순종적인 여자를 꿈꿀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일부 다처제가 더 과학적이지 않느냐고...?
남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지 몰라도
그 입장에 선 여성들을 생각해 보라.
조선왕조 오백년,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인 것이다.
과학에서 대충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면
성경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성경에서의 성은
인간의 근간이 되는 소속감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장치로 묘사된다.
성을 말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안다라는 뜻으로써
서로를 체험적으로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속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성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죄악의 결과로서 관계가 비틀어져 버렸기 때문에
성은 소속감을 만들어 내는 온전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즉, 선악과를 따먹은 자기 삶의 결론으로써
여성은 남성을 사모하도록 되었고
남성은 여성을 다스리도록 된 것이다.
사랑으로 돌아가던 모든 관계가 타락되었을 때는
관계가 지배와 굴종의 관계로 비틀어져 버리는 것이다...
한국어 성경에는 여성이 남성을 사모하라고 번역 되어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desire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즉 남성을 욕구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성의 무엇을 욕구한다는 것일까?
도은미 박사에게 듣기를
여자는 남편 등뒤에 숨어서
시부모님께 대항하고 자녀를 다스리려는 은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타락한 이후
남자는 여자를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한 수단으로 여기며
결과적으로 지배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여자 또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힘있는 남자에게 비굴한 굴종을 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타락한 곳에서는 남녀 관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가 지배와 굴종의 관계가 되어 버린다...
그것이 타락이 가져다 준 삶의 결론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관계 회복에 관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구약의 십계명중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그리고 5계명부터 10계명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온전케 하는 법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신약에 들어와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을 때,
오직 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성경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경은 <관계>에 대한 말씀이며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과 동료 인간 앞에서 있어야 할 <위치>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이 위치를 이탈한 천사가 바로 마귀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올바른 관계란 무엇인가?
오늘의 주제에 따라
남편과 아내에 대한 관계만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남편은 아내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주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라.
역시 지배와 굴종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라는 말씀이 들어가고 또한 주안에서... 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다.
둘이서 하는 사랑은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다.
사랑은 셋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셋중의 하나가 바로 주님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여성의 인권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순종이 논란이 되고 있다.
루이스는 이에 대하여 말한 바
만약 남성들이 자신의 집안에서 쓰도록 되어있는 왕관
(주님의 왕권을 예표하는 것임으로 종이 왕관에 불과한 것...)을
스스로 벗어 여성에게 주게 되는 것이
진정한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는 길일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왜냐하면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사랑하라고 주신 왕관이기에
주님을 닮아 그 명령에 순종할 수록 남편의 왕관은
가시 면류관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이여, 그 가시면류관을 스스로 쟁탈하여 쓰고 싶은가...?
기나긴 이야기...
이쯤에서 멈추어야겠다. 벌써 밤 12시 48분...
2007년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고 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지배와 굴종의 슬픔의 관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어지는 회복의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속에 밝은 영원의 미래가 기다립니다. 우리모두 새해에도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