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10-32)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을 가던중 하란에 머물러 거기서 죽습니다. 그런데 데라 아비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이름이 하란입니다. 똑같습니다.
물질과 우상의 도시 우르를 떠나서 곧장 가나안땅 서쪽으로 향하여 가도 되는데 일부러 하란 북서쪽으로 간 것을 보면, 아들 하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석에는 하란 지역이 아들 하란이 건설했거나 적어도 그의 이름이 붙혀질만한 정착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죽은 아들을 생각해서 갔을 터인데, 그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인정과 대접을 받았을지 상상이 되고, 결국은 그 곳의 번성과 안락에 안주하였을 것입니다.
자식 우상과 인정 우상, 물질 우상이 데라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5형제의 막내로 자란 저는 교육자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엄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우선한 것이 공부였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공부라고 하면 모든 것에서 빠질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셨지만, 성적에 우선하는 믿음을 보이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공부우상, 자식우상이 믿음에 앞서게 되었고, 결국 저에게도 성적우상, 인정우상으로 남게 되고, 알게모르게 자식우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딸아이가 재수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번에 붙어서 가고자 한 길을 쉽게 갔다면, 아무리 세상적 우르를 떠나 우리들공동체에 왔다 할지라도, 자식우상, 인정우상 하란의 ‘번성과 안락’에 젖어 안주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거류할 곳이 하란이 아니라 가나안이라 이야기 하시니, 가장 큰 방해물은 다름아닌 자식우상, 인정우상임을 생각해 봅니다.
적용> 매일 하기로 한 가족 큐티나눔을 빼먹지 않겠습니다. 찾아가볼 아픈 식구들을 방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