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10-32
죄를 쓸어버리신 홍수 이후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울의 죽음이후가 다윗의 시작인 것처럼...
나의 심판도 새로운 시작인데, 죄를 캐내는 회개도 하였지만, 과거를 붙잡고 싶었고 흘려보내고 싶지않은 인간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온전한 회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셈의 족보가 그냥 평범합니다. 몇 세에 후사를 낳고 몇 세까지 낳으며 지낸 것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일찍 낳은 사람도 있고 늦게 낳은 사람도 있고, 나홀처럼 148년을 산 사람도 있고 훨씬 더 오래 산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교회를 오래 다녔느냐? 무엇을 이루었느냐? 보다는 나에게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는 영적 후사가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같습니다.
나는 현재 믿음의 계보가 없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했고, 믿음의 계보는 생각도 없이 오직 기복과 무당신앙으로 50년을 지내왔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믿음의 계보를 잇기 위함이고, 그것이 생육 번성 충만한 삶일 것입니다.
데라는 어떻게 70세에 3명을 낳았는지 오묘합니다. 드디어 조상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롯도 나오고 사래도 나오는데 자식이 없어 계보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상의 도시 우르에서 하란은 세 자녀를 두었어도 아비보다 일찍 죽었고, 사래는 임신도 못해 자식도 없습니다. 결국 순탄치 못한 데라는 우르를 떠나는 회개를 합니다. 자식도 없는 아브람과 사래, 아버지가 일찍 죽은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데리고 우상의 도시 우르를 떠나는 데라는 거기까지가 사명인 것같습니다.
데라는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경제적으로는 어땠을까? 내 수준은 항상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나는 떠나고 옮기는데 믿음의 후사나 영적인 계보가 기준이 아니고 경제적인 기준으로 살았습니다. 나의 직업도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된 것이 항상 걸리면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이 믿음의 계보가 아닌 돈을 벌기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잘될까? 저쪽으로 가면 잘될까? 하는 기복이 나의 기준이었습니다.
나의 앉고 일어섬과 출입이 믿음의 계보와 영적 후사의 생육 번성 충만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주님.
데라가 우상의 환경에서 살았지만
마지막에 사명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지금 환경에서 안주하고 눌러앉고 싶지만
떠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가야 할 곳으로 가게 하시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