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인심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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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2.26
12/25(화)
삿19:10-21
사사기 17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사사기의 부록편입니다. 이 부록편은 이스라엘의 영적인,사회적인 타락상을 폭로하기 위해 제작한 현대판 PD수첩의 시리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7장, 18장은 마가의 신상이야기가 나오고 19장은 레위인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그리고 성적인 타락의 수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19장에 첩을 둔 레위인이 음행하고 도망간 자기 첩을 찾으러 처가에 들렀다고 첩장인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해가 질 시간이 가까와오자 어디에서 유숙을 해야하는데 그가 택한 장소가 기브아입니다. 이 성은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성입니다. 그가 이 성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율법에 나그네를 길거리에 재워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이 레위인 일행에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벌써 오랫 전의 일입니다. 아마 1995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 보고를 하러 센프란시스코를 지나면서 어느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한 번도 뵌적이 없는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때만해도 지나가는 저같은 나그네 선생을 그냥 돌려보내기가 뭣해서 인지 목사님 달려와서 식사대접을 하고 저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와같은 교회인심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안 간지가 벌써 수년이 지났습니다.
교회가 사랑이 식어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해외선교비 책정도 자신의 교회의 이익과 맞아 떨어져야 책정합니다. 좋게 말하면 감독이 심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어저 새벽에 한국에 왔습니다. 베트남의 중요한 일은 제 아내에게 맡겨두고 몇가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좀 일찍 들어왔습니다.
율법에 따른다면 베냐민 지파는 이 나그네들을 맞아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가 나그네를 맞아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이나하면 레위인 일행을 영접한 사람은 베냐민 지파가 아니고 에브라임산지에 이주하여 사는 그 역시 나그네에 불과한 한 늙은 노인이었습니다. 오직 그만 관심을 갖고 레위인 일행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을 때 우리말고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촛대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비록 사랑의 하나님이시긴 하지만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끝내 말을 듣지 않을 때 촛대를 옮기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도 두려운 맘으로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혹시 나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일은 없는지...?
지하절 역에서 아들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아들친구는 베트남에 몇 달 있다가 간 적이 있는데 아내와 전화 통화하면서 그 아이 잘 대해주라고...
주님, 오, 주님 이 미련한 종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좀 넒은 마음으로 후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