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0;1-32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방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야벳처럼 나의 관심과 유익 외에는 무관심한 자로 살았습니다. 남들이야 싸우다가 죽든 말든, 나만 좋은 바닷가 세상에서 내 일만 하며 살고 싶었고, 그것이 고고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바람처럼 다녔습니다. 지극히 이기적 개인주의면서 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니므롯이 엄청 부러웠고 나의 자녀는 니므롯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세상의 전설처럼 여겨지는 영웅호걸이고 교회까지 다닌다면 다 갖춘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함의 족보는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지만, 부러워서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기도 합니다. 함의 자손들은 대대로 셈의 자손들을 괴롭히며 전쟁을 하고, 교회 안팎에서 셈의 후손을 위해 수고하는 족속들로 보입니다.
셈은 장자이면서도 잘난 것이 없어보이고 부러울 것이 없는 이름들이지만, 평범하고 작은 이름들이 이어져 가는 것 같은데, 그 이름들을 읽으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야벳처럼 살고 싶어도 함의 자손처럼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싶어도,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셈의 족보입니다. 야벳과 함처럼 살았어도 마지막에는 셈처럼 살라고 이름이 마지막에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나홀로 잘살고 싶었고 나만을 위해 살았어도 마지막에라도 돌이켜 셈의 장막으로 돌아오면 구속사의 계보에 오를 것입니다.
지난 50년을 야벳처럼 살았고 함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 구속사를 알게된 자로서 그 장막에서 살아야겠습니다. 돌아오는 야벳도 감싸주며 공격하는 함을 맞서며, 오신 예수님을 잃지 않고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고 싶습니다. 후손들의 지도를 보니 야벳이 8곳, 함이 9곳, 셈이 3곳입니다. 셈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아브라함이 나오고 다윗과 예수님이 오실 족보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여 가는 것은 세상가치관이 아니고 구속사의 가치관인 것입니다.
지금 미약해 보이더라도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나만 홀로 잘 살고 싶었고 니므롯이 되고 싶었습니다.
용서하옵소서.
구속사의 족보를 알았으니 그 장막에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가진 것이 없고 미약해 보일지라도 살리고 살기를 원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케 하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셈의 후예로 살려면? 생각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