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오늘 본문을 보면서 또 왜? 가 시작되었습니다.
왜 잘못은 함이 했는데 벌은 그 아들 가나안이 받을까.
노아는 둘째아들의 실수를 그렇게 가혹하게 벌했을까.
가나안은 억울하지 않은가.
아침에 눈뜨자 본문을 읽고는 계속 곰곰 생각하고 묵상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은 다 억울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라는 것이 억울합니다.
나를 첫 아담으로 이브로 지으셨다면 나는 선악과는 안따먹었을 텐데,,,, 하며..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함은 방주안에서부터 불순종과 대적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 늘 품고 있던 불만을 아버지의 실수를 통해 해소하고자 했던,,,
그럴 듯한 명분을 가지고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했던,
아버지와 같이 되고자 했던 그런 대적하는 모습이 예전 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그 아들인 가나안이 그대로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나안에게도 아버지와 비슷한 속성이 심겨져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환경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환경은 오늘 나에게 억울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억울하고,
또 신기한 것은 그 억울함은 또한 하나님께 가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랫만에 저녁시간에 집에서 영화 한편을 이틀에 걸쳐 보았습니다.
버틀러,
8명의 대통령을 섬긴 백악관의 흑인 버틀러,
그는 백인의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을 지켰고
그 아들은 체제에 반항하고 시위하면서 자신을 지켰습니다.
아버지는 비굴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았고
아들은 아버지가 피땀으로 벌어온 돈으로 대학을 다니며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억울했지만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진실을 찾아 나갔고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진실을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따지고 보니 모두가 억울하고, 또 결국 아무도 억울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인생인 것 같습니다.
노아는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담갔는데
그 포도주가 뭔지 모르고 맛있다고 마시다가 취해서 수치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생명을 보존한 위대한 노아가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마 노아는 다시는 그렇게 취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포도주를 잘 몰라서 한번 당하고,,,무너지고,, 그리고 포도주를 알고 나서는
술로 인한 죄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는 함과 가나안의 모습이 좀 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의 모습입니다. 생각해보면 늘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의 논리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며, 나는 억울하다며,,,
그러나 다시 진리를 만나기 위해 종으로 살아야 하는 세월이 있습니다.
그 세월을 잘 견디어야 진리의 말씀을 만날 수 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주시고 저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종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잡는다 하면서 권위를 무너뜨리고 본분을 잊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들에게 보여질 저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저로 인해 저의 아들도 종으로 살아야 하는 그 세월이 얼마나 길어야 할지를 생각하며,
조심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때마다 한번더 자신을 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