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과 교만한 큐티]
주일 직장 목장에 속해있으면서 목자님들의 삶을 보면, 바쁘기 그지없어서 어떤 때는 참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일주일 내 내 직장에 속해서 바쁘게 살면서 카톡방 확인을 해도 답글 달 시간조차 없으신 우리 목자님. 문자 찍는 속도가 느리다고 하시니 어떤 때는 카톡을 올리기도 죄송했습니다.
집안일에 직장일에, 목원들 전화 심방과 만남 등, 돌아볼 일들이 겹쳐서 주일에 얼굴을 뵈면 이마에 바빠, 바빠 라는 단어가 씌어 있는 듯해서 안타까운데, 늘 주일 낮에 반찬을 풍성하게 만들어 오셔서 맨 입만 들고 온 목원 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정성에 감동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해결하기 힘든 목원 들의 고난과 투정질에 즉시 처방하지 않으시고 깊이 기도하시다가 조심스럽게 처방을 내리신 후, 그 처방이 혹시나 상처를 입히지는 않을까 늘 다시 확인하고 살피시던 목자님의 삶이 영적 자녀를 낳는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겉보기에는 분주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시키신 일만 하는,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낳고 죽었더라’ 의 단순한 삶이 우리들교회 목자님의 삶이라 생각되어 존경하게 됩니다.
저는 요즘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습관이고, 곧바로 큐티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합니다. 그냥 읽기만 하면 그 날 본문을 잊어버리니까 조금이라도 기억하고자 컴퓨터에 타이핑을 하고, 그 후에 묵상을 합니다.
아직 큐티 하는 form이 정착하지 않아서 formless 하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그냥 쭉 써내려갑니다.
적어도 2014년 한 해 만큼은 매일 큐티를 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무조건 씁니다.
그리고 교회 큐티나눔 게시판에 올려야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은 큐티를 써서 올릴 때보다 올리고 나서 훨씬 더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그 날의 성경 본문은 몇 시간만 지나면 대부분 까먹지만 내 손으로 내가 쓴 큐티 글은 대부분 기억이 나기 때문에, 오늘 묵상은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저렇게 했어야 하는구나....... 그 말씀을 진짜 적용해야 할 부분은 이런 부분이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면서 아, 이게 바로 큐티하는 맛이로군! 하는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완전히 말씀과는 다르게 혼자 떠들었구나 싶은 후회가 되는 큐티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후회가 남는 것이 큐티를 안 쓰는 것보다는 백 번 낫다는 것을 느낍니다. 썼으니까 후회도 할 수 있으므로~.
이러면서 큐티도 점점 formless에서 form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컴퓨터를 켜기 귀찮아서 그냥 딸과 함께 본문을 읽으며 둘이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 전에는 성경을 읽을 때 도통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고, 왜 여기 이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는데, 우리들 교회 와서 김양재 목사님께 구속사적으로 순서대로 읽는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 배우고 나니까, 이제 읽을 때마다 성경이 조금씩 이해되고 재미있고 구절구절마다 숨어있는 구속사적인 관점이 무엇인지 세세히는 모르지만 느낌이 온다는 것이 딸과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과거에 성경을 깊이 있게 봐야 한다며, ‘구약 성경의 핵심 메시지’ 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약 성경보다 훨씬 길고 방대한 두꺼운 책을 사다 놓고 성경 대신 읽었으며,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읽을 법한 각종 신앙 서적들로 책장을 채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을 읽으면 무슨 감동도 없고 도통 이해가 안됐으니 지금 생각하면 저처럼 복잡하고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때는 큐티를 하면 무슨 논문을 쓰듯이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했고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꼬집었습니다. 마음속에는 내가 하면 더 잘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저 같은 사람이 이단 되는 겁니다. 아니 그 때는 이미 교회 안에 앉아있는 나홀로 이단이었습니다. 그냥 몸만 교회에 있고 삶은 세상살이에 철저하게 찌들었으며, 제가 쓰는 글은 이미 복잡을 넘어 이단의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가출 때문에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이 들린 후, 하나님은 저에게 힘빼기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정신도 멍한 상태에서 32평 아파트를 15평으로 줄여 이사를 해야 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버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덩치 큰 가구들을 다 갖다 버리거나 내다 팔고 특히 한 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천 권이 넘는 책들을 전부 중고서점에 팔았습니다. 중고서점 역사상 하루 만에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한 사람이라는 알바생의 말에 기운이 더 빠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책들은 김양재 목사님의 책과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몇 권의 신앙 서적들뿐입니다. 이제는 목사님의 책 구입하는 것도 간신히 하는 형편인데, 저는 지금의 이런 삶이 예전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큐티인과 목사님의 저서가 명실공히 최고의 신앙서적입니다!!
수많은 신앙 서적보다 한 권의 성경을 하루에 필요한 분량만큼 읽고 큐티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우리들 교회에 와서 배웠습니다.
이렇게 큐티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공동체의 양육과 의무를 착실하게 준행하며 살다보면, formless 했던 제 삶에 진정한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어 form이 굳어지는 결과가 나올 줄로 믿습니다.
오늘 큐티인에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내가 가지치기해야 할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늘 교만함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뭐든 조금만 하기 시작하면 제 교만에 제가 넘어집니다.
특히 요즘 큐티를 게시판에 올리면서도 늘 제 큐티 조회수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신경이 쓰이고, 지난 6월 교회 창립 10주년 예배 때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제 큐티를 읽어주신 이후로는 큐티를 올릴 때마다 목사님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 썼기 때문에 목사님이 읽어주실 만하다는 교만이 있는 겁니다.
아직도 제 지식과 글재주에 더, 더, 더, 가 남아있어 단순하게 낳고 죽었더라의 삶을 우습게 보는 교만이 넘쳐납니다.
여러 가지 죄 중에 스스로 ‘교만’ 한 것이 가장 어리석은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큐티를 할 때도 단순히 ‘쓰고 올렸더라’ 에 만족하기를 원하고 지금껏 교만했던 어리석음을 깊이 회개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큐티를 올리면서 제 안의 교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교회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그만 하고 혼자 컴퓨터에 쓰는 것과 목장 카톡방에 나누는 것만 하기로 결단합니다.
제가 카톡방에 큐티를 올리면 바쁜 식당일을 하시는 부목자님이 세 번에 나눠서 읽는 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큐티도 간결하게, 깊이 묵상한 후에 짧게 쓰는 연습을 더 하기로 결단합니다.
지겨운 제 큐티를 끝까지 읽어주신 목자님, 부목자님, 우리 목원들 사랑합니다. 지난 6개월 너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