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직장에 다닐 때는 일주일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금방 주일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큐티도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에 할 시간이 없었고 나를 위한 시간은 없이 오로지 돈벌이와 살림에만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이제 집에만 있기 시작한 지 넉 달이 넘어갑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줘서 살고는 있으나, 사실 직장에 다닐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습니다.
집에서 칩거하면서도 입고 바르고 먹는 것은 전부 고급을 원하는 딸 얼굴을 낮에는 안보니 좋았고, 일단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니 그저 돈만 보면 안심이 되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편이 주는 돈 160만원으로 살림살이에만 집중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월말에 빠져나가는 각종 공과금과 통신비, 보험료, 은행 이자, 십일조 등등을 빼면 한 달에 순수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60만원 남짓한데, 그 중에서 15만원은 딸과 저의 병원비로 써야 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힘들어하는 딸 때문에 비싼 기름을 쓰며 차를 움직여야 합니다. 입맛이 없다며 밥을 잘 안 먹기에 집에 과일과 군것질 거리가 떨어지면 안 되니 그 또한 지출이 넘치는 원인이 됩니다.
잠자기 전에 돈에 대해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침이 되어도 맨 처음 드는 생각이 돈에 관한 것입니다.
이제 좀 마음에 안정을 찾은 딸아이를 떨쳐놓고 돈벌이를 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집에 있어도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될까봐 마음이 조급해 하루 종일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쑤시며 청소와 정리를 하는 게 하루가 부족할 지경입니다.
안식이 없는 삶..... 저의 현실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복을 주사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안식한다는 것의 의미가 저에게는 도무지 적용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 말씀을 읽는 제 현실의 결론입니다.
딸은 엄마가 집에만 있기를 원합니다. 집에서 자기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고 수다 떨며 칩거하는 것에 행복해합니다. 이 아이를 떨쳐놓고 직장에 간다는 것은 간신히 시작된 딸과의 평화에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저는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속에서 홧병이 올라오고, 딸은 제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면 불안해하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둘 다 병이고, 그래서 정신과와 약으로 치료를 시작한 것인데, 이제 넉 달....... 저는 날마다 안식 없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주일 설교와 수요 말씀을 들으면 감동에 취해 하루 이틀 안식을 느끼지만, 마취에서 깨어나듯 삼일 정도 지나면 또 다시 반복되는 딸과의 지루한 삶, 바닥난 돈을 보면 제 안에 불안이 올라오는 걸 느낍니다.
이 불안감은 언제 없어집니까?
주님. 우리 딸은 언제 제 시선을 벗어나 자기만의 인격체로 혼자 설 수 있습니까?
언제까지 놀며, 언제까지 별거중 남편이 주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하며 (그것도 감사한 것은 알지만), 언제가 되어야.......
아침 묵상이 이렇게 흘러갈 때마다 제 안에 불쑥 올라오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다 니 탓이다. 니가 그렇게 살았던 결론이다. 너 때문이다!!!
지난 수요 말씀에,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는 올바른 자존감과 자기 죄를 보는 것 사이에는 굉장한 긴장감이 있다. 우리는 존엄한 존재이면서 죄악된 존재이기 때문에 적절한 자존감의 균형이 필요하다.” 라고 쓴 어떤 신학자의 저서를 목사님께서 인용하셨는데, 절대 공감을 느꼈습니다.
자제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저는 목장에서 늘 딸에 대한 고난을 이야기 하며 딸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목장에 재미를 붙인 딸이 목장에서 늘 나누는 주제가 바로 저에 대한 고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딸과 저는 서로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안된 것입니다. 자기 죄를 못보고 남 탓만 하는 겁니다.
자존감과 자기 죄를 보는 것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것처럼,
지금 저와 딸 사이에는 자기 죄를 보는 것과 서로를 고발하는 것 사이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지금은 인내하는, 겪어내는 시간이겠지요.
인간을 지으시고 주일을 거룩하게 하사 안식을 주신 후에 다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그 때부터는 사람이 거해야 할 구역을 정해주시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정해주시고, 자유 의지와 권리를 주시고, 돕는 베필을 주사 거룩한 가정 사역도 허락하시는 것을 봅니다.
안식이 있기 전이 아니라 안식이 있은 후에 비로소 인간은 인간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고 (7절) 할 일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과 안식의 참 의미가 제 인생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저와 딸 사이에 먼저 안식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자유 의지로 살아가며 엄마와 딸로서 행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제대로 수행하는 온전한 모습이 회복되기 위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을 일평생 지키기를 원합니다.
별 인생이 없기에 내가 이 삶을 생각보다 오래 지속하게 될지라도, 주일에 주님 말씀을 사모하며 예배로 달려가야 하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어야, 딸과 제가 진짜 사는 길이겠지요.
삶의 첫 출발과 중심에 주일성수와 예배와 말씀에 대한 경외함이 바로 설 때, 그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
주님이 시작하셨으니 주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이 삶에 안식이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