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0-31
어제까지가 정적인 창조라면 오늘은 동적인 창조입니다. 생동감은 들지만 복잡해집니다. 자기 마음대로 날고 기고 움직일 수 있으니 사고도 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안 듣고 안 지키기겠지만 원칙이나 규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특히 가장 많이 하나님의 속을 썩일 나(사람)를 만드시고 그냥 매우 좋아하셨는데, 무엇을 기대하고 바래서도 아니고 나 자체를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의 손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참 많이 아프시게 했고 슬프게 만든 자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 앞에 귀한자이고.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삼위께서 의논하여 신중하게 만드셨고 땅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 사랑을 내 입술로 내 머리로 가슴으로 얼마나 헤아리며 알 수 있겠습니까? 다섯째 날까지의 창조가 나(인간)을 위한 창조 같기도 합니다. 더욱 겸손하고 겸손하여 주의 음성을 듣는 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식을 낳은 부모의 사랑을 조금 알지만 하나님의 자녀 사랑에 비하겠습니까? 인자를 unfailing love라고 합니다. 한결같은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지만, 나는 직역하여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엄마의 사랑을 비롯해서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부터 영원까지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물이 왜 생물의 근원이 되었느냐면 H2O가 어쩌구 저쩌구를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물은 아무 역할도 없이 흐르다가 또는 고였다가 끝날 수도 있었지만, 생물을 번성케하는 역할을 받았고 그에 맞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물이 생수가 되었고 식물이나 동물은 모두 물이 있어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날개가 있어서 스스로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날으라 하시니 날게 된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 없이 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육지의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거기에 맞는 역할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창조 되었지만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이 은혜입니다. 그 창조의 사랑이 구속사의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말할 수 없음을 용서하시옵소서.
그래도 하나님의 나를 창조하신 그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처럼 사랑으로 베푸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오늘 마지막 목장에서도 잘 듣겠습니다.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