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19)
새해 첫날 첫 문자가 부고의 소식이었습니다. 같은 분야로 존경하는 스승님 중 한분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도 저희집 근처에 사시는 관계로 모닝커피와 아침을 같이하며 이런저런 의논을 했었고, 돌아가신 당일에도 아침에 통화하고, 동기이신 제가 모시는 어르신 교수님을 병문안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새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제의 말씀에 왜 둘째날 유일하게 궁창(하늘)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4)'라는 말씀을 안하셨을까? 지구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궁창위의 물이 징계의 수단 '노아의 홍수'로 쓰일 것임을 가슴 아파하신 것은 아닐까? 빛을 만드시면서 어두움이 구별되고, 하늘을 만드시면서 하늘처럼 되는 것을 경계하듯이... 창조사역은 기쁨의 과정이 분명하지만 분명 경고의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Hidden will of God' 처럼...
오늘도 동기를 잃으신 어르신 교수님은 병상에서 눈물지으십니다. 믿는 분이시니, 천국가셨을 것이라고 위로해 드려도,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순서에는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사명'이 다하셔서 부르셨을 겁니다. 그래도 '송구영신' 예배에 가셨더라면 안돌아가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도 이 사건이 기쁘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창조사역에서는 '씨'와 '열매'라는 단어가 크게 보입니다. 그냥 채소가 아니라, 그냥 나무가 아니라 '씨'와 '열매'가 있어야 한다 하시니,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 이 인생에 내가 남겨야 할 것이 '씨'와 '열매'임을 묵상해 봅니다. 바로 '나자신'이 하나님이 만드신 '씨'이듯이 그저 열매맺는 '씨'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전 외래를 보던 중에 아내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 ...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해 가신대로 다른 사람의 창조사역을 도우며 사명 감당하는 당신에게 2014년에도 팔복과 기쁨이 충만하길 기도할게요'
적용> 오늘 위로할 분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