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때에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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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2.18
2007-12-18(화) 사사기 15:1-20 ‘형통의 때에’
11 유다 사람 삼천 명이...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기 전까지 신앙생활의 목표는 만사형통이었습니다.
대표 기도를 하시는 분들의 공통된 간구도 ‘범사에 감사’거나
‘만사형통’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형통은 블레셋 사람의 다스림 속에서
별 탈 없이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노예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택한 사람 삼손의 형통은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삼천 명이나 되는 그들이 천 명밖에 안 되는 적이 무서워
자기 형제를 잡아 적에게 넘긴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 대신
대적의 다스림을 받는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우리 인생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중략...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고
행복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제 국민일보 겨자씨 라는 칼럼의 일부인데
행복 이라는 단어를 거룩 으로 바꾸면 더 은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쁜 여자가 있으면 장가들고 마음에 안 들면 떠나고
다시 보고 싶어 찾아갔다가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니 못 참는 삼손...
대적을 진멸한다는 동기는 선할지 모르지만
수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삼손이 마음먹은 대로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타고난 은사, 엄청난 힘이 있었기 때문인데
타고난 은사에, 늘 지켜주시는 여호와의 영까지 함께 하시니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 젯보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에게 허락하시는 진정한 형통은
고난이 없는 ‘범사’가 아니라 고난에 직면하여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나니
고난이 축복이고, 고난의 크기가 믿음의 수준이라는 말씀이 해석되어
이제는 고난의 복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쑥스럽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압제를 받던 시기에 사사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큰 은사가 있음에도 대적을 진멸하지 못하고
큰 시련도 없이 여전히 자기 힘으로 형통한 삶을 사는 삼손의 모습에서
현재의 삶에 안주하여 목이 마를 때만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내 모습을 봅니다.
그런 삼손에게 예비된 삶,
한 번의 구원을 위해 받은 은사를 다 쏟아 부을 그의 미래를 알기에
형통의 때에
오히려 고난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주시길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