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큐티나눔이 되겠네요...ㅡ.ㅡ
저는 이제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기 시작한지 6주째입니다
너무 늦게왔다는 자책을 뒤로하고 여호수아를 다 끝내려 하루에 한두개씩 지난 설교를 들으며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중입니다.
오늘 들은 내용은 내안의 강팍함을 보아야 한다는 설교였습니다.
처음 강팍이란 단어를 들은건 목장예배때였지만,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강팍이라는 단어를 메모했었습니다만
오늘 설교를 들으며 무엇이 강팍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 푸세식화장실을 사용해왔으며 세면대도 없이 수돗가에서 씻고
목욕은 한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로 목욕탕에 가곤 했었습니다.
그런제가 새엄마의 힘든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에 있는 언니집으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할당시에
언니는 미아리 산꼭대기 집에 방한칸짜리 월세를 살고있었습니다.
거기역시 방한칸에 신발을 신고 나와서 세수를 해야 하는 좁은 부억이 있었고, 씽크대는 꿈도 못꾸었으며
화장실은 주인과 같이 사용하는 푸세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한곳은 그전보다 방이 좀 넓어지고 화장실이 수세식인 세탁기를 들여놓을수 있는그런 장소였고
작지만 씽크대가 딸린 부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툭하면 나가라는 언니의 잔소리에 못이겨 결국 방을 얻어 나가게 되었지요.
그곳역시 미아리 산꼭대기처럼 방한칸에 신발을 신고 나와야 하는 부억같지 않은 부억에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해야하는 좌식 수세식이었습니다.
당시 한번 아프면 일주일을 일어나지 못하던 저는 원인도 모른채 그저 약을 먹고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저를 불쌍히 여기신 남친의 부모님은 저희 부모님과 상의하에 남친의 집으로 들어가 살수 있게 해주셨지요
그때...제가 좀더 알아보고 결정을 했어야 했다는 그때 결정에 대한 후회는 아마도 평생 지우지 못할것 같은 악몽을 주었습니다.
그집에 처음 들어간 저는 넓은 주방과 씽크대 그리고 넓은 방이 두개에 완전 수세식 화장실과 세면대까지
갖춰진 걸 보고 이런곳에서 살고싶다는 얄팍한 욕심에 다른건 다 제껴두고 들어가 살게 되었지요
그러다 임신이 되고 만삭때부터 남편의 폭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갖 돌이 지난 아이를 두고 도망을나와 소송끝에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안에 강팍함이 부러움과 욕심이었던것을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내죄가 무엇인지 또다시 알게 되는 시간이었던것 같습니다.
이혼후 반지하에서 살면서 햇살 잘 드는 집에서 빨래가 잘 마르는 것을 보며 사는게 소원이 된 저는
아파트를 장만해 놓았다는 지금의 남편을 과대평가하게 되었고, 불신결혼임에도 그게 잘못된걸 깨닫기는 커녕
생각조차도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남편과의 부부생활에서도 힘든 2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작년 추석전 제사를 얼토당토 않게 제게 넘기신
시어머니는 그후 연락을 끊으셨고, 요양원에 계셔 가끔 찾아뵈었던 시아버지마져 요양원을 옮긴후 위치를 안가르쳐주시는 시어머니로 인해 힘든 시부모님의 고난을 겪고있습니다.
이 모든게 저에 강팍한 마음에서 나왔다는걸 오늘 알게 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결혼전에는 기도로 깨어서 기도로 잠이 들었었는대
결혼후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기도하는게 힘들어지고 잊어버리고...그런저런 이유로 기도가 멀어졌으며
지금은 기도를 하려 해도 그습관으로인해 기도를 하지 못하는 저를 다시한번 보게되었고
다시 열심히 기도해야 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살고싶은 내안의 강팍함을 버릴수 있게 기도합니다.
아직은 마음이 아닌 머리로 말씀을 이해하려 하는 남 편과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실 시어머니와
병상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계실 시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에 깨어나게 해주신 목사님...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