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질문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깊은 곳에서든지 높은곳에서든지 한 징조를 구하라 하셨을 때 왜 아하스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 했을까? 또한 이사야는 그 일이 왜 사람과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라고 했을까?
아하스가 당장 전쟁에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어도 말씀이 아주 안들리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영적 근시안이어서 하나님의 징조보다는 당장의 승리가 급했고 그래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며 자기는 그러지 않겠다고 교묘히 믿음의 모습으로 포장을 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정확한 말씀으로 아하스의 태도는 사람과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와 우리가족과 부모형제의 구원이고 날마다 사랑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며 감히 그야말로 믿음의 교과서 같은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걸리고 큰아이가 대학 3학년인데 토익도 국가고시도 소홀히 여기고 책은 펴놓고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금방 영적 근시안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둘째는 아직 큐티를 가뭄에 콩나듯이 하는데 아침 등교길에 태워다 주면서 제가 얘기를 꺼내면 너무 이론적이다. 엄마의 경험이라 해도 그렇게 들린다. 하면서 뭐씹은 표정을 보일 때 속에서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큰애 에게는 네가 3학년인데, 준비할 것도 많은데, 이런 이런 것 까지는 당연히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둘째에게는 실생활에서도 이토록 유용한 큐티를 왜 하지 않느냐며 ~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큰 애는 또다시 주눅들고 자신없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둘째는 엄마는 뭐든지 다 말씀으로 몰아가려 한다면서, 올바른 대화를 어렵게 합니다. 제가 너무 제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올바른 생활습관과 태도를 가르치지 못했고 죄책감으로 일관성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해서 지금의 결론이 온것은 알지만 마음이 답답합니다.
또한 저도 앗수르를 끊임없이 끊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더 수고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희 가정에 오늘도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사랑하신 그 징조가 참이라고 하시니 다시 힘을 얻어 회개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적용
내가 구할 징조는 빛가운데 있는것, 집안일 잘하고 큐티 안 빼먹고 저녁에 한 마디라도 나누고 남편에게 순종의 언어를 쓰는것, 어떤 환경이든지 잘 기다리는것, 그리고 이모든일에 생색내지 않는것,
기도
하나님이 친히 주신 십자가 징조 잘 붙들고 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