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야
그 사건들이 조금씩 징조인줄 알았습니다.
애매하게 주신 것 같은 징조는 애써 받지 않으려고 했고,
확실히 주신 것은 부인하고 모르는 척 했습니다.
사람을 괴롭히고(사7:13)
그 많은 징조 속에 뚜렷한 것은,
딸이 고3때 당한 성폭행 사건이고,
또 하나는 아들이 부지중에 사람을 운전하다 죽인 사건입니다.
그 두 가지만도 제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징조였는데
잘도 살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제 죄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제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하는 자녀들에게
덜 미안하여 정신을 덜 차리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사용안하던 방어기제까지 다 끌어내어
'난 아직 멀었으니까'
'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야 해'
이러며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죄들을
다윗도 그랬으니까 하며 연민의 눈물만 흘리고
적용은 안합니다.
적용 할까봐 하루 종일 뱅뱅 돌기만 한 적도 있습니다.
전, 오늘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면서 오늘 너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하고 물으신다면
'아직'이란 단어를 빼는 것을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아직도 이 모양일까
아직도 멀었구나
제 속에 잠재해 있는 이 '아직'은
한참동안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이(마1:18)
동거하기 전에 무서움으로 왔어야 하는데
전 무서움도 없었습니다.
깜깜한 자궁속에 티끌로 계셨던 예수님을 묵상하니
무서움을 못느끼는 건
더 큰 죄였구나.
죄를 저지른 것보다, 숨기고 살은 것이 더 큰 죄라고 여겨집니다.
딸이 성폭행 당한 것을 오픈하면서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단상 위에서 옷을 한꺼플씩 벗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 아니고 사람앞에서 했기에
수치심을 느낀 거라고
나중에 해석을 들었어도,
제겐 그것이 큰 징조여서 제가 벗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야 오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간증을 하시는 분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마1:24)
'아직'자고 있지말고
'이제'깨어 일어나
주의 분부대로 행하여 .. 그 다음 해야 할 일,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며'(마1:25)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아직' 이러며 삶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더이상 죄와 친구하여 살지 않는 것이며,
해야 할 일은 교회에서, 직장에서 질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르치고 공부하는 일보다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분부가 아닌, 주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더 외롭고, 더 고통스럽고, 더 죄를 볼 것을 이제 선물로 받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며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두려운 선물이 감사합니다.
어제 하루종일 스스로 왕따하는 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직'도 이러구나 가 아닌 '이제 또 겪어야해' 로 바꾸겠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치료를 위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하며
이유를 대고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기 싫은 미술실을 가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일을 겪을까 두려워하며
'이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