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7;10-17 마1;18-25
하나님의 사랑의 끝은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보니 그 끝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이지경입니다. 북쪽 에브라임은 하나님을 모르는 부지깽이 같은 자들과 도모하여 형제 유다를 치려하고, 유다는 어디서든지 여호와께 구하라고 해도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치 않겠다며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봐도 기가 막힐 일입니다. 네가 다윗집안이다, 청컨대 들을지어다하시며 주를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친히 처녀가 잉태하는 임마누엘의 징조를 보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유다는 믿고 의지했던 앗수르에게 당하게 될 것입니다.
게으른 것을 빼고도 내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을 때는 내 생각이 너무 강하여 내가 이미 응답해놓고 있을 때가 있고, 기도 했다가 안 이루어져 하나님께 실망하고 그나마 있던 약한 믿음마저 무너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보다 더 믿는 것이 나에게 있을 때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하스는 세 번째 이유 때문에 구하지 않습니다.
#65279;나는 내 생각과 내 욕심으로 결혼했었고 결국 잘 살아내지도 못하는 이중의 사건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또 고2 말부터 앓기 시작한 코 질환으로 평생 가장 많은 기도를 하였고 지금까지 수술도 여러차례 하였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회개도 모르고 기복무당 신앙으로 기도 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고, 지금은 교만에 대한 가시로 받아들이지만 괴로우면 기도하게 됩니다.
구하지도 않으며 목이 뻣뻣하여 사람과 하나님을 괴롭게 했어도 내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그 사랑으로 임마누엘의 징조를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인간의 의만 알 때는 요셉이 대단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구속사를 알고 나서는 요셉이 큰일 낼 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구하지 않고 구속사를 끊으려는 아하스였고, 의로운척하며 가만히 끊으려는 요셉이었지만 매주 주의 사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구속사를 알고 내 주제를 깨달아 조금씩 순종하게 됩니다.
이 땅의 인간들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나의 교만과 욕심 불순종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나에게도 임마누엘의 징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징조를 이루시기위한 그 사랑으로 이 땅과 나에게 오셨습니다. 그 사랑입니다. 날위해 죽으시려 오셨고 그 사랑 때문에 또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의로운척 가만히 끊으려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고, 나같은 자를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주님.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끊지 못할 그 사랑에 놀랍습니다.
그 사랑의 주님과 더욱 친근히 지내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오신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Jesus Name Amen
적용>주님의 그 사랑을 조금씩이라도 전하기(말투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