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의 서로 다른 QT 해석 때문에...
작성자명 [이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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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2.14
늦은 감이 있지만 입다의 서원을 묵상하다가
우연히 성서 유니온 선교회의 매일성경 에서 다른 해석을 발견하고
해석상의 문제점을 생각해본다.
다음은 개역한글판 매일성경 과 한영대조 매일성경 의 서로 다른 해석이다.
1. 개역한글 매일성경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교도들처럼 인신제사를 드리는 것을 역겨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입다는 율법에 따라 자신의 잘못된 서원을 회개하며 철회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성경- 개역한글p.114)
- 이 견해에 따르면 입다는 서원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쳤음을 알 수 있다.
2. 한영대조 매일성경 (개역개정 + NIV)
그(입다의) 맹세는 하나님께서 가장 증오하시는 인신제사를 내표하는 경솔한 짓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결국 그는 그 맹세를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성경 - 한영대조 p.108)
- 이 견해에 따르면 입다가 서원대로 행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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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출판사(성서 유니온 선교회)에서 발행한 다른 버전의 매일성경 에서
이처럼 다른 해석을 보게되어 조금 당혹스럽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본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입다의 서원 실행 여부에 대하여
견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두 책 모두 이 구절에 제 3의 견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긴 꼭 언급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 3의 견해를 소개한다. (미전풍 주석)
그가 그 딸을 죽음으로 정하고, 그녀의 몸을 번제로 하여, 여호와께 드렸다고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녀 없는 것이 수치인 것으로,
그녀가 종생 독신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을 친구들이 함께 슬퍼한 것은 무리는 아니다.(37-38).
이 딸은 씩씩하게도 아버지로 하여금 서약을 이행하게끔 자신을 희생 재물로 삼았다고는 하나,
그 헌신은 애곡의 헌신이었다.
제 4의 견해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디럭스 바이블 주석)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31절)
- 이 구절은 그가 암몬 족속과 전쟁하기에 앞서 여호와께 드린 서원이다.
이 서원에서 번제 는 반드시 불에 태워서 바치는 제물(burning offering)이라기보다
바쳐 올리는 제물 (ascending offering)을 의미한다 .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35절)
- 입다가 승전 후 집에 돌와왔을 때에 그의 무남독녀 가 자신을 영접했을때
그가 슬픔을 느낀 것은 그의 서원 때문이었다.
이는 곧 제물로 바쳐야 할 딸의 희생에 대한 극심한 비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의 슬프다 란 말은 염려를 나타내는 일종의 감탄사이다.
- 나로 참담케 하는 자 란 말은 네가 나를 당황케 하는도다 로 번역할 수 있다.
이 구절의 원어를 볼때 입다의 걱정은 그 딸이 정말로 죽게 될 지경에 놓일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의 걱정은 딸이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성전 봉사에 평생 바침이 되어야 하기에
자신의 기업을 계승되지 못하게 됨으로 인하여 걱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란 말은, 실상 나의 처녀됨을 인하여 라고 번역되어야하며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는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니라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녀가 하나님의 번제물 이 되었다는 것은 평생도록 결혼하지 못하고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이 된 것을 가리킨다 (헨리 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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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3, 4 견해에 따르면
입다는 딸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나 그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성경 무오론적 관점을 꼭 문자적 의미로 해석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평신도로서 신학에 대해 문외한이다 보니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아뭏든 다소 신빙성이 의심되긴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
중세기(15세기) 이후부터 인정 되어온 해석 이라는 메튜 헨리의 지적을
못 본척 하고 넘기기엔 왠지 개운치 않다.
물론 신학자들의 주석이 꼭 옳을 수는 없지만 (때로 말도 안되는 해석도 있지만)
성경 자체가 종종 문학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텍스트의 함축적, 상징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고 본다.
(주여, 혹 잘못된 견해라면 저의 무식을 용서하시옵소서!)
어쨌든 한영대조 매일성경의 QT 필진은
입다가 서원을 실행하지 못했다 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제3,4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긴 하지만
이 또한 설명이 없어 분명치 않다.
바라건대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귀한 자료인 매일성경 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겟다.
편집위원들의 신학적 견해부터 먼저 정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 당분간 글을 올리지 않기로 해놓고 답답한 마음때문에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