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1-18)
모세도 죽기전 요단동편 모압땅에서 신명기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었듯이, 여호수아도 죽기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함께 당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삶의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밤 늦게 세 식구가 큐티나눔을 하였습니다. 시험에 떨어져 우울한 여느 수험생과 똑같이(?) 먹고, 자고, 싸고, TV보고, 책보고의 일상이 똑같아 별로 적용할 것이 없다하는 딸아이를 붙들고 나눴습니다.
먼저 제가 나눴는데, 낮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내년도 전공의 1년차가 새로 선발된 지가 2주가 넘었는데 전혀 인사를 오지않아서 거꾸로 불러서 인사받고 축하와 당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상식과 예의로 자연스레 하던 인사를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실력으로 되었다는 이유로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최근 선배 전공의를 오랜기간 기다려 준 널널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료, 선배 전공의나 간호사들에게도 이렇게 대하면 큰 일입니다. 그래서 오버(?)해서 야단을 치며 ‘인사’가 모든 인간관계의 처음과 끝임을 가르쳐주고 ‘겸손’을 강조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6)’는 것이 무조건 가운데 조용히 있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떨 때는 ‘좌’, 어떨 때는 ‘우’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적용이었는데.... 아내의 나눔이 갑자기 딸아이의 ‘인사’에 꽂히면서 ‘나눔’이 ‘훈육’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근 집에서 본 딸아이의 모습에 아쉬움이 있었나 봅니다. 나도 순간 동조를 했으니... 마무리 기도의 아멘 소리가 크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이랬으면 하는 ‘바램’이 욕심이 되었고, 결국 ‘큰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내와 그랬습니다. ‘맞아, 당신도 이렇게 바뀌었는데...’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도 이렇게 변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내가 산 증인입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더 내 맘대로 살고, 세상적이고, 예의없고, 교만하고, 남을 무시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의 삶’으로 증거되어 보고 있으니, 갑자기 아쉽다기 보다는 딸이 이정도 하는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어 말씀하시는 것(2-13)이 이스라엘 백성을 ‘겸손’케 합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거저 주셨습니다(12-13). 이것만으로 여호와만을 섬길(14)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래서 ‘간증’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래서 6개월마다 바뀌는 목장에서 간증을 해야하나 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나의 삶’을 돌아보면 풀지못할 문제가 없을 듯 합니다.
적용> 가족 큐티나눔에서도 나의 삶을 돌아보는 ‘간증’ 나눔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