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9;24-51
아셀이 조금 부럽습니다. 야곱의 축복도 부럽지만 모세의 축복은 더 부럽습니다. 오늘 차지하는 땅도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없이 이르고 이르고 나아가서 이르다가 바다에서 끝이 나는 것이 좀 불안합니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을 받았고 왕의 진수를 누렸고 풍요와 형제들의 기쁨이 되는 부러움을 누렸습니다. 또 철과 놋의 문빗장처럼 바다와 다른 지파들에 싸여 있습니다. 이렇게 부와 풍요가 넘치면 가까이 있는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바다는 망할수 있고 죽을 수있는 사단의 회일지도 모릅니다. 잘 풀리고 잘 나갈 때 곁에 바다의 유혹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납달리는 상수리나무(oak)가 걸립니다. 땅을 분배할 때 지역이름으로 나누는데 상수리나무가 등장하고 잘 모르지만 우상과 음행의 냄새가 납니다. 모세가 은혜와 여호와의 복으로 축복하였는데, 우상과의 전쟁이 있고 후에 예수님이 활동하신 갈릴리 지역과 게네사렛호수를 차지하였습니다. 아마도 갈등 충만의 땅이었을 것입니다. 안식은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갈등가운데 말씀으로 평안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단은 지도에서 땅이 손바닥만 합니다. 야곱은 뱀으로 모세는 사자새끼로 축복하는데 지혜와 용맹으로 싸우고 점령하여 땅을 넓히는 능력이 있었나 봅니다. 싸워 얻은 땅까지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기업의 땅 분배를 마쳤습니다. 여호수아도 한 성읍을 받습니다. 12지파가 다 차지하고 남은 땅을 여호와의 명령과 여호수아의 요구한대로 핀트에 맞게 받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분배를 마쳤어도 아직도 눈의 아들입니다. 눈의 아들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여전히 낮아지고 겸손하기를 요구하시는 것같습니다.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녔고 이것 저것 많이 하고 배웠고 부목자와 목자를 를 수년간 했어도 훈장이나 상급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훈장 받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되었다함이 없습니다. 평생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것으로 족합니다.
왜 나눔을 쓰다 안쓰다 하느냐고 하실 때, 다른 사람 핑계를 댔습니다. 나의 게으름과 체면과 발가벗은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인데, 저번에는 남에게 상처를 줄까봐 라고 이번에는 매일 안써도 된다고해서 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런 모습이 안타깝고 회개합니다.
여호수아를 마지막으로 땅 나누는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잘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쟁과 갈등이 있겠지만, 그 삶을 사는 내가 조금씩 변해서 다른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물으며 가야 하겠습니다.
주님.
어렵게 나누는 땅을 묵상하며 부러운 것도 있고 안되는 나도 보았습니다.
주신 기업을 묵상하며 사명을 찾아 잘 살아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예민하여 욕심 부리지 않고 땅을 벗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잘나가는 사람 시기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고, 겸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