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6;1-10
이틀 전부터 지역이름이 계속 나옵니다. 가나안 지역 이름들이 다 등장할 것 같습니다.
나오는 지역마다 사건과 역사가 있고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 비밀을 모릅니다.
내 생각대로 대충 읽으며 모르니 답답하다고 불평하는 마음은 야곱의 축복을 기뻐하지 아니한 요셉의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요셉처럼 이제 좀 되었다고 자녀에게 주는 축복을 야곱이 주는 대로 받지 않고 내 생각대로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자기가 받은 축복으로 부모 형제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베풀었는데, 나는 나만 잘 먹고 잘살자고 쌓아 놓기만 했었습니다. 힘든 형제를 돌보기 싫어하는 인색한 자였습니다. 아프다고 물어오는 전화나 경제적으로 힘든 형제의 전화는 받기가 싫었습니다. 우애로 맺어진 끈끈한 혈육의 정도 없었지만 내 마음에 사랑도 믿음도 없었습니다. 또 믿음없는 형들의 충고나 가르침이 무시가 되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교만한 자였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정적으로나 본가 부모 형제들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잘 살아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 믿게 된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것도 매일 넘어집니다.
에브라임은 무엇을 잘해서 한지파를 차지하고도 므낫세 형의 기업중에 에브라임 성읍을 주셨는지 알 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게 가족대로 받게 하셨을 것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형제임을 잊지 말라고 엮어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의 형제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잘 섬기고 끌고 가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에게 구원을 전하는데 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의 형들과 누나를 구원으로 엮어 갈 수있는 기회를 얻기를 바랍니다. 내가 관심이 없는 자였습니다.
유다는 여부스를 무슨 이유인지 쫓아낼 수 없었고(could not), 에브라임은 가나안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다(did not). 에브라임은 종으로 노역을 시키려는 불순한 동기가 보입니다. 가계에 흐르는 유전적인 성품이 있기는 있나 봅니다.
나도 내속에 연민으로 붙잡아두는 것도 있고 나의 유익을 위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나를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방해한다고 느끼면서도 인간적으로 끊어내지 못합니다.
요즘 송년모임이 많은데 끊어내지 못하는 인간관계와 왕따 당하는 것이 싫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애들을 핑계로 전처를 내 마음속에서 쫓아내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내가 세상을 끊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자칫 내가 그들의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잘 보이면 된다고 하면서
실제 삶은 내 생각대로 살고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위안하면서
실제는 잘 보여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주님.
형제들에게 소홀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엮어 주신 것인데 구원을 잊고 대하였습니다.
내속에 남아있는 가나안과 여부스가 많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오늘 송년 모임 밥만 먹고 돌아오기(안 나가는 적용은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