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심과 질투 끝에 얻은 결과물은?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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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2.03
시기심과 질투 끝에 얻은 결과물은?<삿>8;1~12
[우리를 이와 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시기와 질투의 끝에 얻은 결과물은
맏물포도에도 끝물포도에도 얻을 수 있는 수확이 없습니다.
시기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자꾸만 시기가 일고 질투가 생깁니다.
동기가 불순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개인의 세속적 유익이 포함이 되면
진정성이 의심받게 되고 신실함이 소멸케 됩니다.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나의 유익입니다.
내 개인의 사적 유익입니다.
나에게 돌아 올 세속적 유익이 앞에 놓이면
순수성이 사라지고 현상만을 크게 보게 됨으로 본질이 위협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역]을 감당키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가
개인의 세속적 유익부터 내려놓는 일임을 광야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욕구를 그대로 붙잡고 있으면
이기적 욕망이 싹트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타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를 보면
이 시기심과 질투는 비교의식에서 싹트게 됨을 볼 수가 많습니다.
유난히 비교를 많이 받고 자라났습니다.
성적에 대한 비교...!!
이것 때문에 받은 상처가 너무나 큽니다.
저는 독학을 참으로 좋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공부한 결과에 대해 성적으로 비교당하기 싫다는 생각이
제 사고와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저는 실력도 부족했겠지만 시험 운도 없는 편이었습니다.
나는 시험을 잘 못 봅니다.
시험에 대한 운이 있는 사람들은
찍는 것도 잘 맞는다 하는데 나는 찍는 것조차도 무조건 다 틀립니다.
그런데 세상은 시험의 결과를 가지고 말합니다.
시험의 결과가 그 사람의 겉포장을 만드는 실력이 되어
학위, 학력, 학벌이 자리 매김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항상 어딜 가도 실력보다는 학력이 학벌이
그 사람의 가치를 가르는 잣대요 기준이 되어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았었습니다.
나는 독학을 참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합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신학]도 독학으로 해 보려 하다가...
이건 교만이다 싶어 포기했지만...
그 덕에 신학에 관한 서적은 여러 신학생들에게 주고도 많이 남아 있네요...
그 이유는 나의 부족한 학벌을 채우기 위해서는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나은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너무 부끄러운 학벌을 내세워 보았자
sky와 비교당하면 학원 강사 선호도에서 여지없이 밀리기 때문입니다
sky출신들과 비교 당하면 나는 늘 손해를 보았습니다.
선호도에서 먼저 제압당했습니다.
sky대 출신 국어 선생들보다도
내가 더 많은 아이들을 내가 다녀 보지 못한 sky에 보냈어도
나와 만나보고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선입견부터가 달랐습니다.
당연히sky대 출신들이 실력이 좋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들보다 더 많은 수강생을 유치하고 있었는데도 늘 손해를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나를 기억하는 강남이나 분당의 학부형들은
내가sky대 출신 일 것이라고 추측하여 속고 있을 것입니다만 >
그래서 학벌에 실력이 밀리지 아니하려고 더 많은 공부와 연구를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나의 발전을 위해서 전화위복은 되었었는데...
그만 비교당하기 싫다는 이 강박관념이
치열한 전투력과 호전성을 지니게 하였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나의 온갖 잔머리와 잔꾀를 술수로 처절하리만치 지독하게 많이 부렸었습니다.
아마도 단과 학원 강사의 생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수강생들의 머리수가 [대 강사]라든가 혹은[실력 있는 유능한 강사]로
대접받는 풍토 때문에...동과목끼리의 그 치열한 경쟁의식은 정말 치열했습니다.
특히 [십자가]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는 나로서는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요 또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이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정말이지 가공할 만한 전투력을 발휘했었습니다.
그 결과 술친구는 많은데 우정을 나눌 만한 친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그나마 몇 안 되던 세상 친구들마저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기억 속에는
나의 부정적인 부분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저들은 내가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거 그 자체를 신기해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교회 다녀도 나는 못 다닐 사람으로 여겼었고
그 중 일부는 내가 아직도 교회에 다니나 할 정도로 의아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토록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는 인기는 있었는데
동료들에게는 평판이 아주 나빴습니다.
결국 비교 의식으로 생겨난 시기와 질투로 인한 경쟁력의 결과물은
하나도 남은 열매가 없습니다.
다 내 삶의 결론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이유도
이런 나의 강퍅한 성품이 한몫했었음을 고백하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토록 철저하게 속물적이었던 이런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AS시켜서 정품으로 만들어 가며 사용하시느라 정말이지 많은 수고를 하십니다.
뭐하나 봐 줄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죽하면 암에 걸려 죽었다 해도 안 가 볼 것이라고 하며 떠나가 버린
애들 엄마에게 배신당하여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피를 나눈
골육지친들에게마저도 무관심 속에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이토록 무익한 인간을...
예수님만은 나를 봐주고 계십니다.
긍휼을 허락해 주고 계십니다...민망히 여겨 주고 계십니다.
나는 절대로 사랑받지 못 할 줄로 알았는데
정말이지 이 세상의 인생들 65억 중에서 내가 제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고쳐서 사용해 주고 계십니다.=아멘=
나에게 [예수]가 없었다면...
주님! 감사라는 단어로는 그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감사합니다.
주님...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