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름이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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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30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도서7:1~4)
예수님의 이름이 영화로운 것처럼 비록 나약한 자들이지만 그래도 우리들도 그 모습을 닮아가려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넘어짐과 깨어짐을 통하여 더욱더 성국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실 노는 일이 깊이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보다는 쉽고 편안하기 때문에 나 자신조차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서 먹고 마시며 노는 것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서 행하는 것들이 모여서 좋은 결과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초상집에 가보면 인생의 의미를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으며 왜 죽었는지에 대하여 많은 말들을 합니다.
얼마 전에 친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료직원의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 먼저 천국에 갔으니 나중에 만나면 될 것 아니냐는 동료의 말에 가슴이 아파옴을 느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죽음조차도 수용해야함을 겸손하게 배웁니다.
죽는 날이 태어난 날 보다 더 낫다는 역설을 생각하면서 결국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간 인생입니다.
나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는 결국 인생을 잘못 산 결과가 되기 때문에 양심에 꺼리는 일들을 멀리하고자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14~16)
형통한 날과 재앙의 날도 결국은 주님의 주재권안에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환란을 통하여 인생은 더욱더 풍성하게 됩니다.
삶을 살아가는 기본자세는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겠지만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하고자 하며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나의 인생은 잘 풀렸다기 보다는 곤란을 당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선택을 잘못하였으며 그 때 좀더 잘했다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나 자신을 알기 때문에 나는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일들을 하기 위하여서는 형통한 삶이 더욱더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21~22)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우연한 사건으로 믿었던 동료들로부터 노조와 연계하여 공개적으로 게시판에 비방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미웠지만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나에게도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들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았습니다.
생활을 하면서 부끄럽지만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하여 많은 비평들을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악평을 받은 이후로는 나 자신이 다른 이들을 비평할 자격이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함으로 오늘 본문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누군가가 무어라고 말을 하든지 간에 결국은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이 떳떳해야 함을 배웁니다.
나 자신이 연약함을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평가는 주관적이어서 결국에는 그 것이 공평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