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길갈은 2007년 혹은 8년의 어느 목장 예배였습니다.
어느 교회에도 없는 직장 목장의 위력이 제게도 임했습니다.
부목자가 되어서도 계속 이혼하겠다고
말 그대로 방방 뛰는 제게
저보다 나이 어린 목자님이 엄마처럼 웃으며
'그래 알았으니 해도 다음 텀(목장)에 가셔서..’
그렇게 처방하는 것이
그 목자님이 연약해서 부목자가 이혼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러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땐, 교회와 목장에 잘 붙어서 질서에 순종하는 제가
여보란 듯이 이혼하는 첫 부목자가 되고 싶다는
악한 말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6-7개의 고등학교마다 미술치료 시간 강사로
다니고 있었던 시절이라
그래도 예배를 지키기 위하여 수요일만 내놓고 있기에
거의 5년 넘게 한가한 수요일마다 이혼해 달라고
아이들 아빠에게 전화해서 괴롭혔습니다.
어느 수요일은 전화를 안받고,
어느 수요일은 시간이 정말 바쁘다며
다음 수요일로 연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길갈의 그 목장예배에서
“내 입으론 이젠 이혼하자는 말은 안하겠다”
라고 선포하고 돌아서 집에 올 때,
목장 끝나고 십분도 안되어 삼성역쯤 왔을 때,
10년 동안 같이 살지 못했던 아들이
집에 자기 살 방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기 차에 짐을 싣고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원룸을 내 주었다고 또 떠났지만)
이혼하겠다는 말만 안한다고 적용해도
그렇게 보고싶고
밥차려주고 싶은 아들과 살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또 할례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일도 할례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처음엔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도 멀었나 했는데,
어느 목자님이 아직도 멀었냐는 질문이 안나올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내년에 60살인데, 아직도 학교에서 미술강사로 잘 보이고 싶고,
이번 후원의 밤 미술전을 잘해서
우리 미술 선생님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을 할례해야 합니다.
강사로서 한시간 수업이 늘면 기뻐했던
그 시절 맛나 맛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채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순간 순간 하루에도 수십번 듭니다.
이번 토요일에 전시인데 그래도 극심한 스트래스가 없는 것은
매일 큐티 때문입니다.
매주 주일마다, 수요일마다 듣는 말씀 때문에
내 욕심을 가지치고, 칼로 베고 오는 것 때문에
너무나 아팠는데,
하나님이 주신 그 감사한 아픔 때문에
이혼을 안했습니다.
34살 아들과 29살 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랑스런 깨끗한 호적을 주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들교회, 목사님
가까이서 저를 견뎌준 목자님들 만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