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작성자명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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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23
칼을 가지고 적을 죽여라.
양날이 날카롭게 선 긴 칼은
적의 기름엉킨 창자와 간을 가르고
두터운 뼈와 가죽마저 뚫고나와 적의 목숨을 싸그리 앗는다.
진동하는 피냄새...
잘 짜여진 전쟁영화에는
일반적인 생활 영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비장미나
보다 한 차원 높은 고귀한 신념이 배여있다.
전쟁은
신념이나 조국애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언가를 위하여
목숨을 걸게 만든다.
만약 그 전쟁터에서 함께 한 친구가 적의 총에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칼을 품에 숨기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적군 왕의 목숨을 취하러 떨치고 일어나라!!
전쟁은 시작됐다.
계산은 끝났다.
더 이상 머리 굴리지 말고 적을 죽이는 것에 집중하라!!
“이 문제는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해.”
내가 말했다.
“꼭 해야 한다. 프시케, 이건 명령이야.”
“사랑하는 마야, 난 이제 언니 명령을 따라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내 인생도 끝을 내야지.”
나는 망토를 뒤로 젖혀 왼팔을 드러내고 단검 끝이 팔을 뚫고 나오기까지 깊이 찔러 넣었다.
상처 밖으로 다시 칼을 빼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오루알! 미쳤어요?”
프시케가 펄쩍 뛰어 일어나며 소리쳤다.
“단지 안에 천이 있어. 상처를 묶어다오.”
주저앉아 피가 관목 위로 떨어지도록 팔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그 아이가 비명을 지르거나 두 손을 마주 잡고 어쩔 줄을 모르거나 정신을 잃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아이는 천으로 내 팔을 감았다.
피가 겹겹이 스며 나오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C.S. 루이스의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도 에훗의 칼과는 또 다른 칼이지만 뼈를 뚫는 칼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칼은 에훗의 칼이 아닌 오루알의 칼일 것이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내 생도 끝장내야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봐라.
나는 너 때문에 죽는거야!!!!!!!!!!!!!!!!
소설속의 프시케에게 오루알의 으름장이 먹혀들어간다.
오루알,
날 죽이겠다는 협박은 할 필요가 없어요.
... 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내가 가장 존귀한 사랑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
아마도 해가 뜨기 전에 내 모든 행복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요.
이것이 언니가 책정한 언니의 목숨값이에요. 자, 이제 그 값을 치르겠어요.
가세요, 언니는 언니의 목숨을 찾았어요. 가서 그 수명을 끝까지 누리세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모든 행복, 그리고 신념의 많은 부분까지 포기한 채,
언니의 목숨을 언니 스스로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영원한 방랑의 길에 오르게 된다.
살아생전, 그 언니와도 다시 한번을 만나지 못하는 길로...
오루알은 그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과 슬픔에 싸인 채,
일에만 미친듯 몰두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한 나라의 군주가 된다. 그리고 위대한 여왕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루이스는 이 소설의 맨 앞에 다음과 같은 프롤로그를 써 놓았다.
사랑은 너무 어려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윌리엄 세익스피어 / 소네트 151
나는 큐티엠에 들어와서
이 스토리의 다른 형태의 이야기들을 각 버전별로 퍽 많이 보아온 듯 하다.
그런데 책속의 주인공 프시케와는 달리
대부분의 인간은 상대방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다.
아니, 그런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가!!
결코 나는 그런 너의 부당한 요구로 인해
나의 인생을 허비하지도 손해 보지도 않을 거야.
상대방이 스스로를 찌른 칼자루조차 비웃으며 코웃음쳐 버린다...
이것은 비극을 넘어서는 비극이... 아닌가?
훗날 오루알은 이웃 나라를 여행하는 도중에
프시케를 여신으로 섬기는 사원의 사제에게서 프시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에는 아풀레이우스가 전하는 ‘큐피드와 프시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언니들의 질투가 프시케를 파멸로 몰아넣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큰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 오루알은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신들에게 항변한다.
자신은 질투때문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랬노라고,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 바로잡아 달라고...
그러나 신들에게 항변하는 가운데 오루알은 스스로 깨닫게 된다.
프시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소유하려는 사랑이었으며,
그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오루알은 자신의 스승인 여우 선생과 경비대장인 바르디아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 역시 진정 그들을 위하는 사랑이 아니라
글롬 왕국의 여왕인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었음을 후일 깨닫게 된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헤아리고 충족해 주기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그들을 희생시켰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진정 상대방을 위한 사랑인지
아니면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닌지 깊이 성찰하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라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이 작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또한 묻고 있다.
추녀인 오루알은 얼굴에 베일을 쓰고 다닌다.
그녀는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 자신의 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처럼 타인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가리는 것이다.
신들에게 항변하면서,
그리고 신들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오루알은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는다.
우리가 베일을 벗고
진정 얼굴을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신성한 존재와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만날 수가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과 이유는 분명하다.
친구를 속이고 있는 적을 죽이러 나는 출전했다.
칼을 잘 써야 하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면!!!!
나의 칼에 기름을 부으시고 함께 하시기를!!!!
끊임없이 속고 있는 가련한 친구여.
이젠 그만 좀 손털고 일어나시오.
왜 그리 가면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나요?
당신의 사랑은 너무 어려서 양심이 무언지 알지 못하고 있다오...
가면을 벗고... 이제 밝은 햇살아래로 나아 오시오.
그것이 처음엔 공포의 햇살로 느껴지더라도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이것은 오루알의 칼이 아닌 에훗의 칼입니다.
나는 당신 때문에 내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때 적을 잘못 분변하여 당신 자체에게 칼을 겨눈 적이 있습니다만...
용서하세요.
그것이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이제 진짜 적을 분별하여
함께 하는 전쟁을 치루는
진정한 동지가 되기를 제 속에 품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부탁드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