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1]
여유로운 저녁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둘째가 응가를 했다면서 바지를 붙잡고 와서 오랜만에 목욕을 시켜줬습니다. 대하에 장난감도 몇 개 넣어주고, 물장난도 치면서 우는 소리 한 번 없이 깨끗이 씻겼습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날이 썰렁하니 목욕을 하면 드라이로 머리를 꼭 말려주라고 한 것이 생각나 아이를 뚜껑을 닫아놓은 변기 위에 세우고 머리를 말려주었습니다. 몇 번 이렇게 했었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중심을 못 잡고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한 0.5초의 순간이었을까요? 변기 옆과 벽 사이에 얼굴이 끼어 있는 아이를 얼른 들어 올리고, 상태를 확인 했을 때는 이미 코와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놀라서 뛰어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소파에 앉아 아이를 진정시키며 상처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술이 부르트고, 우는 아이를 어떻게 만져 볼 수도 없고 안절부절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응급실에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했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말도 못하는 아이가 계속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두렵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 까? 하면서 계속 자책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가만히 아이를 꼭 껴안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저도 놀랄 만큼 아이 엄마가 담대하게 안식 가운데 나가자 조금 있더니 아이는 물을 달라고 하고 금 새 언제 그랬냐는 듯 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을 자세히 보니 상순소대도 끊어져 엄청 아팠을 텐데 다시 방긋방긋 잘 웃는 것입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했지만 계속 마음이 불안하고, 그 장면이 순간순간 떠올라 가슴 속으로 울먹였습니다. 결국 한 11시 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여호수아 1:9~10)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대단한 지도자 모세 곁에서 80년 동안 수종을 들었던 여호수아가 이제 모세가 죽었으니 얼마나 두려웠을 까요?
제가 의사선생님의 괜찮다는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고 일을 할 수 있었듯이,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백성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이끌지 않았을 까 생각했습니다.
역시 큐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매일 매 순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건 가운데에서 두려워하고 떨 수밖에 없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앞으로도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나가는 삶이되길 원합니다.
[묵상 2]
아이가 다치자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다치기 바로 전에 뉴스에 나오는 장애아들을 구타한 범죄자들을 보고 ‘아이 저놈들 다 영존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해!!’ 라고 말했던 것과
나머지 하나는 장모님이었습니다.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여호수아 1:14)
5월에 교통사고로 난 처남이 아직도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장모님을 두고, 제가 얼마나 장모님도 저와 함께 요단강 건너서 싸우러 가자고 했는지 왜 그렇게 연약하시냐고, 이 사건은 축복의 사건이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니, 또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체휼하지 못 하고, 보호하고 위로하며 남기고 앞장 서야 할 상황과 아닌 상황을 구분하지 못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그 마음을 몰랐던 것에 후회의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어떻게 보면 이 작은 일에도 가슴을 졸이며, 아이를 쳐다보고 생각하면 마음이 ‘찡’ 하면서 저려오는데 하물며 아들이 의식을 잃고 손과 발에 심하게 마비가 와서 굽어져 있는 것을 매일 봐야하는 그 마음은...
저는 정말 죄인입니다. 그래서 목장에서도 그렇게 찌르는 겁니다. 양식을 준비하지 않는 다고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급기야 이런 저 때문에 아내도 우울증이 온 것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체휼을 못하고 교만하고 덜렁거리는 것인지 항상 바쁘고, 많은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언제나 양식이 없어서 비어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상처를 주는 칼입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안식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안식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제게 붙여주신 가족과 목장식구들, 동반자들 믿지 않는 친구들에 앞서 요단강을 건너고 그들도 그 땅을 차지하게 하길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여호수아 1:16~17)
그러기 위해 ‘잘 난 나 한 사람‘ 말고 ‘강한 우리’ 가 되겠습니다. 질서에 순종하며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또한 만약에 제가 피해자가 되더라도 “내가 모든 것을 용서 할 테니까 제발 예수 믿어라”하고 말하는 사람(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28p, 김양재)이 되겠습니다.
[아이들(little ones)(수 1:14, KJV)을 안식 있는 곳에서 잘 보살피겠습니다. 장모님께 사죄의 카톡을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