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 가시 되고 올무 되어 얼룩지고 뒤틀린 반백년의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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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20
열등감이 가시 되고 올무 되어 얼룩진 반백년의 내 인생을~<삿>2;1~10
열등감이 가시 되고 올무 되어 얼룩진
반백년의 내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물론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믿음의 날개를 달았고 평강과 안식을 얻었고
이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시민권자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65378;에덴의 회복#65379; 중에 피난처를 얻었습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나의 반백년 인생살이는
열등감이 올무요 가시가 되어 어둠가운데 헤매던 그런 삶이었었습니다.
#65378;자존심은 열등감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65379;이라고 하였나요.
그랬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허세를 부렸고
열등감 때문에 이생의 자랑을 더 많이 하고 다녔고
열등감 때문에 나서기를 좋아 했습니다.
이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경계심을 품었고
이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행하였고
이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위장술의 가면을 썼었습니다.
이 열등감이 나를 내성적으로 만들었고
이 열등감이 나를 낯가림이 심한 자로 만들었었으며
이 열등감으로 인해 미움을 배웠고
이 열등감으로 인해 증오심을 키웠으며
이 열등감으로 인해 용서에 인색하였으며
이 열등감으로 인해 화해와 타협의 진정성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 열등감의 주된 요인은 사랑을 모르고 성장했었다는 데
주된 원인이 있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었기에
단어와 뜻은 알았지만 마냥 낯설기만 한 그런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에로스만 있는 줄로 알았고
그래서 성에 일찍 눈을 뜨게 하는 계기도 만들었습니다.
오직 어린 사절에 떠오르는 기억은
평생을 직업 없이 무능력과 무기력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다
일찍 그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의 모습과
사랑을 줄 줄을 몰랐고 전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많은 자녀들을 거두느라
오직 아는 것이라고는 욕설과 매질로만 일관 했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시기와 고자질로 모함을 즐기며 매 맞는 나를
비웃음의 고소함으로 지켜보았던 골육지친들의 모습들만이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니...
내가 어찌 사랑을 알겠으며
남을 배려한다든지...베푼다든지...섬긴다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나는 처절한 열등감 속에 갇혀서
깊은 고독의 우울한 세월을 탕진하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교당하면서 열등감에 빠졌었고
서럽도록 무시당하면서 열등감의 상처에 빠져있었습니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책에 빠져있었고...
책이 나의 도피처였었습니다.
참으로 많고 다양한 책을 섭렵했었습니다.
지금도 감사하는 것은....내가 예수 믿기 이전에도
이러한 환경의 내가 다른 잘못된 삐뚤어진 인생을 살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고 인도해 주님에 대한 은혜입니다.
나는 내 안의 얼룩진 분노로 인해
안 좋은 길로 빠질만한 기회가 있었고 그러한 환경가운데 살았었습니다.
어쨌든 내가 책을 좋아했던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아들, 딸이 책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 어머니는 이것마저도 나를 인정하는 데 인색했습니다.
‘애들이 책을 좋아하는 걸 보니 지 큰 고모를 닮았나보다’고...
늘 이랬습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니 내 아들 딸들이 애들 가까이에서 영향을 준 나를 닮지
어떻게 1년에 한 번이나 만날까 말까하는 내 큰 누나를 닮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열등감의 올무와 가시에 갇혀서 살아왔었습니다.
#65378;정말이지 지금 자녀를 키우는 세상부모들이
이러한 비교의식을 버려주기를 하소연합니다.
때문에 사역을 하며 부모들을 상담할 때 이 말은 빼놓지 않고 당부하고 있습니다.#65379;
이러한 나를
그야말로 열등감의 상처로 인해 깊고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나를 건져 내신 사건이 바로 #65378;십자가 사건#65379;입니다.
반백년을 열등감의 흑암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내 안에 예수님이 오신 사건으로 나는 새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체험을 통한 눈물 콧물의 회개로 참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물론 열등감의 올무와 가시에서 완전히 벗어나
참된 평강과 안식 가운데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는
8년이라는 기나긴 광야의 연단과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글쎄요...또 다른 무엇의 회복을 위해 아직 광야 가운데 있어야 되는지는
아니면 혹 나의 광야가 끝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만이 아실일이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직 더 받아야할 광야의 훈련은 남아 있다하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자존감은 회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삶 모두를 드려 여호와 편에만 서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며 주바라기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청종하며 순종의 인생을 살 것입니다.=아멘=
이 길만이 반백년의 기나긴 세월을
열등감의 올무와 가시 가운데
꼬이고 구겨지면서 서럽게 살아온 내 인생이 구원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