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7-13)
제 목소리가 기본적으로 큽니다. 식당에 가면 식구들이 조용조용 말하라고 지적을 합니다.
직업병입니다.
환자를 볼 때, 제 목소리를 잘 못듣고 되물으면.. 이 환자는 ‘양측 고도난청’ 임이 틀림없습니다. 첫 대면에 진단이 가능합니다.
어린애에게 뭘 가르칠 때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여러번 설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른에게 여러번 설명을 하게 되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에이 됐어요~’ 합니다. 어린애만도 못한 취급을 당합니다. 무시를 받습니다. 영적인 경우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잘 못듣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상처들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젊은 분들이 보청기를 해야만 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오시는 분들은, 이런 상처를 배우자나 자녀에게 받은 경우입니다.
직업적으로 만나는 저조차도 저도 모르게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오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시고... 몸도 못가누시고... 악을 쓰다쓰다 안되면, ‘아이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말씀이 들리고부터, ‘만약 이분이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이 낮고낮은 육체의 모습으로 오셨다면...(7)’ 을 생각하게 되니, 내가 무슨 짓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일원론’이구나를 깨닫습니다.
‘영지주의(7)’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목장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은 믿겨지는데, 예수님은 안믿겨져’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바로 이 모습입니다.
‘한번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해제끼고, 나중에 회개하지 뭐~’ 이런 내 속의 유혹의 맘이 ‘영지주의’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모두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말라(10)’ 하십니다. 스스로 삼가라(8)고 하십니다. 나의 일상 속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늘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적용> 주변의 (교회와 직장에서) 도망간 자, 도망가고 싶은 자, 아픈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예수님처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