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로 위장한 내 마음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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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19
2007-11-19(월) 사사기 1:22-36 ‘합리주의로 위장한 내 마음’
어제 왕래를 끊고 지내는 작은 아버님들로부터
누님을 통해 종손인 내게 연락이 왔습니다.
족보를 새로 만드는데 필요하니 관련 서류를 보내달라는...
족보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더니,
족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분들 구원을 위해서
협조해야 한다는 누님의 권면이 이어졌습니다.
족보가 싫은 게 아니라 사람이 싫었습니다.
한 때, 선친의 유지도 버리면서 그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사를 부활시키고 집안의 대소사를 논한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제사를 지내고 음복주를 나눌 때면
장조카인 내게 자신들의 인본주의를 설파하며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모두 같은 사상을 가진 분들이기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권면을 수없이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
선친보다 유연한 사고를 하시는 걸로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분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재산 문제로 형제간에 반목하고
눈 오는 날 산소에 쌓인 눈 치우는 일을 큰 효도로 생각하고
어려운 동생에게 인색한 인본주의의 허상을 보며
망하고 손을 벌린 적도 없지만,
망한 조카 안 도와주는 삼촌들로 세상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인본주의의 위선을 보며
인본주의가 얼마나 이기주의와 가깝고
인본주의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누님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권면을 듣고
그분들이 우려하던 예수에 치우친 장조카가 되어 왕래도 끊고 살며
나 먼저 구원받는 일도, 내 가족, 내 옆의 형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힘들고 벅찬 지금 이 상황에서
장래의 구원을 위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
족보 챙겨서 후손에 물려주고 조상의 보계에 담긴 유지를 계승하는 일
이 일에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과연 70 전 후의 그 분들을 구원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집안의 어른이기 때문에 먼저 구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지
그러기 위해 서로 연락하고 왕래하고 집안의 행사에 협조하고
사랑을 전하고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고...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해도 효율성이 있는 일인지
정말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한 가지 분명히 깨달아지는 건
그 분들과의 서먹한 관계의 모든 책임이 나로부터 출발하고
그 분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건 내 삶의 결론이고
사랑보다 미움이 점점 많아지고
호(好) 불호(不好)의 감정이 점점 확실해지는
요즘의 내 마음은 성령 충만의 모습이 아니며
합리주의로 위장한 내 마음도
우선 좀 편히 살기 위해
꺼려지는 일은 구속사로 얼버무려 대충 넘어가려는
이기적 인본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작금의 현실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지혜가 충만하고
되었다함이 없는 나의 모습은 죄가 아니고
자유함의 여유일 뿐이라 여기는
무늬만 성령 충만의 내 실상임을 고백합니다.
적들이 철 병거를 가졌다고 그들을 무서워하고
다 죽이는 것보다 노역을 시키는 게
더 합리적인 것이라는 자신들의 인본주의에 빠져
악에 물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세상과의 타협은 타락과 멸망의 전주곡일 뿐임이 깨달아짐에
애통함으로 소망하는 친척들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
이기주의에 바탕한 인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내가 사랑한 것 같이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먼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철저해질 수 있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