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기에 (요한이서 1:1~6)
사랑하는 것이 안 되는 사람이기에
예수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하십니다.(3절)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정확히 말해서
우리들 교회의 공동체 말씀을 듣고
같이 공감하며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사랑이라는 말씀의 가치관이 없었기에
사랑하지 않고 있는 줄도 모르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나도 견디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지칩니다.
내 옆에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붙이신
불쌍하고 아픈 자녀라는 것을 들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밤에 나가서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는 반복되는 삶을
이해할 수 없어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듯합니다.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보며
공동체 지체의 사랑을 받음으로
하루를 살아 갈 수 있는 듯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노예의 신분인 나를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 때문에
왕 같은 신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 하나로 만족하고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됩니다.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품질이 안 좋은 자식을
내게 주셨는지요?
사랑을 할 수 없는 나를 목마르게 회개합니다..
내 죄가 얼마나 중한지 아는데 안 됩니다.
고통이 멈추어 지기를 구합니다.
버릴 수 없는 자식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하여 지도록
들어오면 따뜻한 밥 해 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병원에 가는 일이 설득해 지도록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