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서로 간에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가능 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든 율법의 요구를 들으시고 십자가에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결국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죽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어젯밤에 예목 숙제를 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목이 건조하여 차를 한 잔 끓이려고 마루에 나왔는데, 아내가 ‘상속자들’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제 속에는 '또 이딴 거나 보고, 희희낙락 거리며 보고 있구만 그 시간에 말씀이라도 한 자 더 읽지는 않고 말이지' 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낮아지는 적용 차원이라며 스스로 의롭게 여겨 잠시 앉아서 같이 보다가 들어가야지 하고 앉았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너무 재미있게 보면서 오글거려하며 키득키득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나는 그런 아내를 위하지는 못 하고 정죄하고, 나는 언제부터 안 봤다고 쓸 데 없는 TV를 본다며 무시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무슨 진리 안에 있는 자라고 그것을 이해해주지 못 했는 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제가 상대를 안 해주고, 얼마나 나 혼자 잘 났다고 큐티 한다며 본질적으로 아내를 무식한 자로 낮게 여겼으면 저렇게 앉아서 혼자 그러고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는 저에게 '너는 혼자 말씀이나 보고 뭐하는 놈이냐?'하면서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내도 말씀을 함께 듣고 가기 때문에 그냥 제가 예목숙제 한다고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내에게도 함께 드라마를 보며 웃어주고 대화의 거리를 만들 수 있는 남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내가 불쌍하고 딱하게 보여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어제는 능희에게 유아부에서 암송대회를 한다고 (살전 5:18) 의 말씀을 일러줬는데 조금 있더니 혼자서 거의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목이 메 일 정도로 감격스러웠지만 마음 속에는 나의 공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자녀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것에 대한 칭찬을 부녀자에게 합니다. 아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고 저녁에는 늦게 까지 TV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이와 항상 함께 있고, 부대끼며 양육한 장본인이라고 하시니 창피함이 올라옵니다.
저는 출근을 아침 일찍 합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도 오늘의 도시락을 싸가기 위해서 전기밥솥에 밥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열었는데, 그제 지은 식은 밥이 있었습니다. 밥이 마른다고 보온을 눌러 놓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회사에 전자렌지가 있으니 데워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밥을 싸려고 전기밥솥을 보니 그 위에 쪽지와 마른 수건이 있었습니다.
"뚜껑 뜨거우니까 이걸로 짚고 열어 새 밥에 반찬 못 챙겨줘서 미안해"
아침 출근 길에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어제 12시가 되어서도 잠들지 못하는 아내를 안타깝게 여기며 먼저 누웠는데, 아내는 그 시간에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어 했을 까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기력증 때문에 남편에게 며칠 된 밥을 스스로 싸가게 하는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며 괴로워했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전기밥솥 안에 밥이 마르지 말라고 스탠그릇을 넣고 그 안에 밥을 넣어 놨던 것입니다.
아내는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났습니다. 남편이 숙제 한다고 하니 자기의 욕구를 죽인 사람입니다. 우울과 무기력을 이기고 일어나 밥을 데워놓은 부녀자 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진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죽어주신 바로 그 것이, 진리임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이제는 나 혼자 잘 난 마음 죽이고, 혼자 말씀 본다며 경건하다는 착각 버리고, 정말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진리 가운데서 함께 걷고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겠습니다.
[‘상속자들’을 함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