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3:14-18)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하시는데...
저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저를 두신 곳이 엄마의 자리 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보호하기도 바빠서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엄마로 살아가는것이
너무 힘든 사람인데 이 자리에 두시고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십니다.
어둡고 침침한 아둘람 같은 카타콤 같은 환경이지만...
그래서 바라보게 될 "새하늘 과 새땅"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나타나길 힘쓰라! 하시는데...
저는 늘 사람들앞에서 점도 흠도 보이기가 싫어 집안에서 내부적으로는
내 감정대로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때 쉬다가
밖에서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니 점과 흠을 가리기 위해 공을 들이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니 가장 삶으로 보여야하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불만의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앞에서 내가 점도 흠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주앞에서 점도 흠도 없는것인데,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들을까봐 나를 미워할까봐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내 두려움이 우선이 되어 나를 보호하며 사는동안 어린 아들은 제 앞에서
감정조절이 유난히 안되고 주먹을 움켜지고 엄마를 때리고 싶어 안달난 아이로 자랐습니다(:14)
주의 오래 참으심이 저를 구원하신 것 처럼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아들의 태도를 보고 가는 것이 구원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형제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우리에게 이 같이 쓰는 것 처럼
저도 아들에게 엄마의 권위로 휘두르지 않고 받은 지혜대로 삶을 써내려가길 원합니다(:15)
베드로가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저 같이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자들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저도 아들을 잘 맡아서 키우라고 하나님께서 설계도를 주셨는데
제 유익과 뜻이 우선이 되어 아들을 억지로 풀어가려니
지금 아들의 미움을 받는 스스로 멸망에 이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16)
그러므로
제가 미리 알았으니, 아들의 인격과 감정을 모독하고 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제 유익의 미혹으로 이끌리지 않고 오늘 마음에 새긴 말씀으로 굳센 믿음을 유지하길 간구합니다(:17)
점도 흠도 내 힘으로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인줄 알고 어리섞게 굴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만 나의 점과 흠이 깨끗게 되는 것을 믿고
주를 아는 지식으로 아들을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먼저 예수님을 경험하는 지식에서 자라갈 때 아들의 새하늘과 새땅도 열릴 줄 믿습니다(:18)
적용.
매일 아들과 엄큐를 할때 저의 죄를 드러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는 엄마가 아닌 겸손한 엄마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