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품질 (벧후 3:14~18)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날마다 목이 메도록 불러 주시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품질 좋은 자녀를
원하고 있기에 허공에 뜬 메아리처럼 들리곤 합니다.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보잘 것 없어서
고쳐 쓸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녀를
내 옆에 붙이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기다림이나
오래 참음이 사치로 여겨져 스스로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 자녀이기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아무리 불러도
점도 흠도 너무도 많기에 받아들이지 않고
불신으로만 가득차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7년 전 아들이 수능 보던 날 첫 시간에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도중에 나왔다고 합니다.
합격이라는 품질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지기 보다는 더 안 좋은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아들이 어찌어찌해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몇주 전에는 핸드폰 장물을 팔아넘기다가
불구속 상태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위로해 주심에 소리 없는 눈물을 머금게 됩니다.(15절)
품질이 너무 나빠서 내 놓을 수도 없고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보았습니다.
픔질이 합격이라는 좋은 상태가 되어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세상의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합니다.(16절)
내가 바로 내 기준의 외모와 성공복음인
품질 좋은 자녀를 취하여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해석해 주시는 목사님과 아둘람 공동체가 있기에
부끄러운 수치를 점도 없고 흠도 없게 하셔서
만들어 가시고자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며 (18절)
오늘 하루를 지탱합니다.
수능 치르고 있는 수험생들과 부모님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65279; 알고 있는 지체들의 자녀들 이름을 불러가며
시험을 끝까지 잘 치르고 후에도 지켜주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