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자신을 묻어 버린 말없는 동행자 누가처럼
작성자명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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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12
27: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27: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풀릴 수 있을 뻔하였다는
아그립바 왕의 말을 뒤로하고,
바울은 로마로 갑니다. 그 누구의 유혹과 방해
환란과 핍박도 그의 로마 행을 막지 못합니다.
로마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예루살렘에서 환란과 핍박을 지나
이제 로마로 갑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의 땅으로 갑니다.
바울의 로마 행은 죄수의 몸이며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심장은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의 첫 걸음에
벅찼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에겐 사람을 붙여 주신단 말씀처럼
바울에게는 믿음의 동역자 우리가 있습니다.
마가와 아리스다고가 함께 합니다.
주저함 없이 바울의 그림자가 되어준 동역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떠한 가를 봅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며 질타 받는 제 모습을 봅니다.
어제 목장예배서 목자님은 현상을 모지 말고 구원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지체를 향하여 하는 소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직도, 영혼구원의 애통함이 부족해, 구원의 외침을 듣지 못하는 지체임을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정말 싫은 존재였고,
폭력과 폭언을 서슴지 않으셨던 분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배려가 전혀 없는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이제 아이 같은 자폐 증상을 보이시며
장애인이 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짐으로 보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생긴 애통함으로 아버지를 교회로 인도하고
이렇게 아버지가 5주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교회를 졸업했다고 하시며
오늘 가서 졸업장을 받아 오라며 억지를 부리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더 가자고 하면 안되겠다 싶어
알겠다면서 포기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부모님들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오늘 새벽
오빠 장례식장에서 넘어져 손이 다친 엄마와 열무를 다듬는데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엄마에게 짜증내고, 저한테는 다시는 교회 가자는 말 하지 말라시며
화를 냈습니다.
순간!! 아버지 마음을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교회 안 간다 하셨지만
가시고 싶었던 것이고
제가 가자고 더 크게 제안 해주시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냥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달라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계속 말씀하시는 것은 현상이고
그 안에 교회를 데리고 가달라는 구원의 호소였습니다.
나도 그런 지체였으며 아니 지체이며 왜 그걸 몰랐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UBF 다니며 목자를 힘들게 하고
그렇게 떠나고 나서도 내심 다시 나를 불러 주길 바랬던 마음……
그 때 갈급함에 주님은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해주시고
여전히 목장에서도 안 간다 하며…내심 다시 찾아 주길 바랬던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진 내가 아버지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
이는 아직도 내 맘에 내 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있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힘든 고난의 길임을 알고도 바울과 동행하였던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보면서
나는 누군가의 동행자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조금 힘들다고 이렇게 내려 놓는 나의 모습을 보며 회개 합니다.
사실 겉으로는 아버지가 나온다고 좋아하고 간증하였으나
그 힘든 아버지가 아직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제겐 함께 오는 것은 즐거움 이전에 고난이라고 생각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출발하는 것부터
교회로 향하는 차안에서도, 그리고 교회 와서도
내내 아버지를 신경 써야 했고 아버지 기분을 맞추느라고
노력 해야 했습니다.
공동체 다른 지체 분들이 남편을 혹 다른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
혹은 함께 와서 하는 수고에 대해서 나눔 할 때 정말 듣기 싫고
내 일로 여겨지지 않았던 그 수고를 하면서
저는 5주 만에 지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지 않겠다고 할 때
내심, 그래 이 이번 주는 편하게 한 주 쉬자는
나의 영적 안일함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가고 싶었던 마음이 밟혀버린 아버지는 분해서
오늘 이 새벽 제게 짜증을 내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 이 짜증 속에서 마음을 읽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아버지의 동행하는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오늘 바울과 함께한 동행자 누가와 아리스다고처럼
저도 묵묵한 동행자가 되길 기도 합니다.
우리들 공동체에서도 나를 알아 달라고 외치는 지체에서
말없는 동행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누가처럼 바울의 고난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 속에서 자신을 묻어버린 겸손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해 몸부림 치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공동체에서 순종하길 기도 합니다.
내 혈기를 내 의를 죽이고 내 힘을 빼기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