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가 끝나가면서 모세의 당부와 노래도 끝나갑니다.
모압에 있던 이스라엘사람에게 맞은편 가나안땅은 꿈의 왕국이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설교는 명령과 규례를 주고 또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었을 것입니다.
순종하면 차지한 땅에서 그 날들이 장구할 것이고
명령과 규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하나님이 대적을 일으켜 징계하실 것입니다.
대적을 일으키시는 것도, 대적을 쓰러뜨리는 것도
이스라엘을 치시는 것도,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것도 모두
누가 하나님이신가 알게 하기위함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바위를 쳐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 ' 내 거룩함'을 나타나지 못하였다 합니다.
40년을 광야에서 백성을 이끈 모세는 물을 낼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 하셨는데(출 17:6)
40년 후에는 치지 말라 하십니다.
반석을 치고 안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합니다.
출애굽 직후와 40년 후의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출애굽 직후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온 것과,
40년 후 모세의 지팡이 끝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달랐을 것 같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행위는 하나님의 '내 거룩함'을 가리는 행위였다 하십니다.
만일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40년 동안 백성중에서 큰 권위로 세워진 모세의 존재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해야 할 가나안땅에서
자동적으로 승리를 보장해줄 힘센 존재로 여겨졌을 지도 모를일입니다.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가리우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방에게 이스라엘을 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방들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줄을 모르고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오해할까봐(32:27)
나외에는 신이 없음을 알리겠다 하십니다(32:39)
모든 역사와 사건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40년간 광야를 헤맨 것도 단순한 벌이 아니라...
젖과 꿀을 얻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는 자가 되기위해서
최소한 필요한 훈련의 기간이 40년이기에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고 살아남게 하시기 위해 혹독한 광야를 견디게 하신 것이 아닌지..
그것이 바로 자기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오늘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금년 연구과제 진행중 전문가를 초청하여 워크숍을 개최하였는데
워크숍의 목적은 전문가의 의견과 토론을 참고로 하여 저의 연구과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론자로 참석한 모대학 교수가
제가 진행하는 연구보고서와 거의 같은 제목과 상당부분 겹치는 내용의
글을 제가 속한 부서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자기 이름으로 기고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글은 워크숍에서 토론된 내용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어
향후 발간될 저의 보고서가 자칫 연구윤리에 위배되거나
금년에 발간되는 보고서의 독창성을 상당히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 교수가 연구원 자문을 자주하고 또 연구원 선임들과 학연으로 연결되다 보니
이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사자인 제가 알고서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수습해보려고 해보는 것 같았습니다.
황당한 일입니다.
전 같으면 소위 종일 뒤집어 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늘
이 사건에서 내가 나타내어야 할 하나님의 거룩함은 무엇인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른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처음에는 동료와 이야기 하는데 신중하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아직 멀었구나....
곧 반성하고 이 일에 내가 뒤집어 질 것이 없다는 결론으로 금방 돌아왔습니다.
결국 이일은 해결되지 못하고 저만 바보되는 스토리로 끝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니....
저는 그저 저의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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