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30-32:14)
목장에서 성경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주로 한절씩 돌아가면서 큰소리로 읽습니다. 이렇게 해야 같은 본문을 주일 이후 한번 더 겨우 보는 꼴이 됩니다. 그리고, 남자 집사님 보고 한번 요약을 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꿀먹은 벙어리~~.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의 인생입니다.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30)’
무엇인가 끝까지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일독도 여러번 다시 시작 하였습니다. 큐티본문도 두 페이지로 길면, 집중해서 끝까지 한번에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요예배도 기도와 찬양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자리지키기 시작한 것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결혼생활도 끝까지 안하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정년도 15년이 남았는데, 끝까지 해야하나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읽고 싶습니다. 내인생의 끝날까지 끝까지 읽고 싶습니다. 내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목장에서 나눔을 하다가 예측된 순서에서 벗어나서 갑자기 질문하면, 남자 집사님들 ‘네? 모르겠는데요...’ 당황합니다. 목자회의에서 목자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나눔에 귀 기울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묻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회의에 들어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립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1)’
정말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밤에 세가족이 수다를 떨다보면 셋이서 각기 따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딸이 손을 번쩍 들고 그럽니다. ‘내말도 좀 들어줘!!!’... 외국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할 말을 영작하느라 그 사람의 말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뜬금없는 나의 대화로 당황을 합니다. 우리들교회의 역대의 연대(7)에도 귀기울이지 않아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환자의 바람과 아쉬움에 귀기울이지 않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보다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내인생의 끝날까지 가족과 목원들과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귀한 의사'....
전에는 ‘귀'를 고치기 때문에 당연히 '귀'한 의사였지만, 이제는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귀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적용> 목원들과 전도대상자,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개별적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귀기울여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