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하나님이 믿고 싶어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제게 전도를 하려 하여도 창세기 1장 1절에서 넘어가질 못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쏟아놓고 30분 이상 토론만 하다가 끝났었습니다.
지금은...
역설적으로 창세기 1장 1절 자체가 제게 증거가 되었습니다.
내가 오늘 몇천년 후에 창세기 1장 1절을 성경을 통해 읽는 다는 것
그 자체가 제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다시 오셔도 어,, 2천년전에 오셨다는 비슷한 분이 또 오셨대....
하고 증거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저의 유년시절부터 저에게 큰 숙제요 과제요 수수께끼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 어느날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성경의 말씀속에서 저의 삶을 보는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경제학을 강의를 하다보면 너무 너무 쉬운 원리인데 그래프와 용어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하고 무척 고도의 지식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떡복기를 파시는 분이라면 어, 그거? 당연한거 아냐?.. 할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살아보고나서 잘못가보고 나서, 다시 덜미 잡혀서 제자리에 돌아와지고 나서,,,,
비로서 성경을 읽으며 저를 읽으며 하나님을 다시 배웁니다.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네눈으로 보았거니와(3)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4)
사십년동안 광야에 있었지만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신이 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5)
자기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을 등장인물로 놓고
열심히 인생의 함수를 풀어대던 사람을,
풀리지 않는 함수앞에서 함수가 틀렸다고 우겨댔던 저를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말씀을 보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이적과 기사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저 자신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눈앞에 펼쳐진 이적과 기사가 놀랍지만,
정녕 놀라운 것은 깨닫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모압평지에서 홍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새로운 약속앞에 서 있습니다.
가나안을 경험하기 전에 신명기는 가나안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마치 예언처럼 명령들을 주십니다.
운명적으로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저도 만세전에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9) 는 명령이 이제는 두렵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
매일 매일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요즘 이상하게 동우가 주일학교를 가기 싫어합니다.
피곤하다 힘들다 하여 교회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다른 활동을 한 적이 몇번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녀가 주일학교에 빠지는 것을 예사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음주에 가면 되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해 둔감한 저입니다.
아이의 주일학교를 소홀히 한 저의 죄를 회개하고
동우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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