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탐심이 하나님을 가두고 공동체에 간계가 되었습니다.
작성자명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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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1.01
21: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바울에게 본질은 철 가방이고 비본질은 갈대라고 하신 목사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바울은 본질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바나바와 헤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지만, 유대인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기도 하고
서원한 자들에게 결례를 행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이 무리를 종용하여
바울을 붙잡습니다.
바울의 그들을 향한 마음을 어찌 이리 모르고 무지하게 구는지..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제가 얼마나 이 무지한 유대인이었는지 다시금 느낍니다.
유대인에게 성전은 너무나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입니다.
어찌 이리 특권의식이 완악한지요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들을 다른 이방인과 차별시켜 주는 도구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거룩하게 모시기 위한 곳이 아니라
거룩을 가장하여 하나님을 가두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그 특권주의 공동체의 리더위치였던 사울이
바울 된 것 그래서 자신들의 특권을 철옹성처럼 지켜줘야 할 그가
자신들만 가지고 싶은 하나님을 이방인에게 소개 하는 것 그 자체가
못마땅하고 죽여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바울을 법적으로 어찌할 길이 없자 온갖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죽여 없애고 싶은 것입니다.
내 것을 나만 소유 하고픈 하나님을 이방인에게 나누다니……
바울도 그런 자였기에 그래서 스데반을 쳐죽였기에
너무 안타까움을 가지고 유대 형제를 보았을 것이고
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스데반과 같은 핍박과 순교의 길을 가리라는
굳은 의지를 계속해서 보여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복음을 나만의 것으로 가두려 하는 지체였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지체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회개 합니다.
어려서부터 차별의식 비교의식이
저를 감싸고 있었기에
항상 사랑에 목말랐고 대접받고 관심 받는 것에
굶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안목과 손가락질을 두려워했고
때로는 관심을 받기 위해 엽기적인 행동도 자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들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장에서도 내 사건이 우선이었고
목자님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 내 사건을 먼저
신경 써주고 처방해주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항상 목장예배를 무기 삼았음을 고백합니다.
내 원대로 되지 않았을 때 목장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고
더 심한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목장이 아니었습니다.
제 목장이었습니다.
우리 목자님이 아니라 제 목자님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저야 말로 공동체에 있어서 유대인의 간계였음을
고백합니다. 공동체의 암적인 존재였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너무 부끄러움을 이 유대인들의 무지할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을
바울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제 자신의 실체를 봅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이런 저의 유대인과 같은 모습의 근원이
제 욕심 때문임을 특권을 누리고 싶은 탐심 때문임을
보며 그런 것들을 모두 내려 놓고 비우길 기도 합니다.
내 사랑하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나누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구마구 나누고 싶은 그런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지길 소망합니다.
제 마음에 유대인의 간계를 버리고
바울과 같은 소망을 가지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리고 이 공동체는
제 것이 아닌 우리의 것임을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