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5;1-10
나는 남을 재판하지 않고 미움으로 정죄를 많이 했습니다.
나의 언어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온유도 없고 겸손까지는 크게 바라지도 않습니다.
남을 잘 찌르고 상처주고 아프게 잘 합니다. 돌아서서 후회하고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나와 친할 때는 잘못한 것도 이해와 용서가 되고 너그러워지지만 사이가 잠시라도 안좋아지면 내 속에서 시시비비를 따집니다. 미워하게 됩니다.
나의 기분과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나의 잣대는 변합니다. 그런 내가 의인과 악인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같은 사건 같은 사람은 놓고도 나와의 관계에 따라 기준이 변하니 내가 참 공정하지 못합니다.
나중에라도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게 된다면 두가지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잘못을 하였다 할지라도 경히 여겨 굴욕감을 주지 말 것이며,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듯이 생계형 잘못에는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기준은 말씀이고 목적은 구원임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계대 결혼은 구속사가 끊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오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지 말아야할 것, 맞이해야 할 것, 의무와 사명으로 행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 즐기거나, 내가 맞이해야 할 것을 저버리고 나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오셔야 할 예수님은 오시지 못할 것입니다. 신 벗김과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여, 공동체에서 모든 자격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파문과 수치와 모욕을 스스로 당할지도 모릅니다.
기업을 무르기 위해 내가 해야하는 계대결혼은?
나는 다른데(불신결혼) 장가가지 말아야하는 것을 알겠고, 홀로된 여자를 맞이해야 하고, 그녀가 과부되지 않도록 의무를 다 하라는 것이 적용인지? 그래서 구속사를 이어가고 나에게 맡겨진 기업무르는 사명을 찾아 이어가는 적용이 억지 같기도 하고...
지금 내가 할 바를 몰라서 주님을 더디 오시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혹시 공동체에서 만나기 싫어서 신을 벗으려는 마음은 없는지?
수치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거룩보다는 세상의 스펙과 외모를 우선으로 생각하지는 않는지?
죽은 남편의 동생이 조금은 이해도 됩니다. 세상에 나가면 이쁘고 갖춘 여자가 많을텐데, 믿음도 없고 구원의 소망도 약하면서 거룩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형수를 억지로 맞아들이라면 신 벗을 각오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잠시 수치를 당하고 내 욕심대로 살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 잠시가 영원이 될 수 있는데...
나는 믿음이 없는 결혼생활을 해보았기에 신을 벗거나 침뱉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남자, 자기에게 구원의 기회인데도 형을 많이 원망했을 것같습니다.
구원은 내가 죽는 것이지만, 믿음의 분량만큼 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
나의 길을 인도하옵소서.
이전의 나의 불공정과 치우침을 용서하시고
공정한 마음으로 결정하게 하시고
사명감당하는 길을 도와주소서.
분별하여 잊지않는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한번 삭이고 부드럽게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