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주님에 대한 절대 신뢰를 보며 세상을 두려워하는 저를 반성합니다.
작성자명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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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27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20:8 우리의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소요가 그치고 제자들을 권면하는 바울
그리고, 안식 후 첫날 강론 중 죽은
죽은자를 살리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왜 바울이 핍박을 받으며
주님을 전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일어나 맞이하는 예수님을 보았기에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 생전 동거 동락하며 수련했던 제자들 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가서 제자 삼으라는 그 사명도
제자들 보다 더 잘 순종한 바울
그 핍박을 소요을 받아가면서
순교하기까지 주님을 전하고 제자 삼기를 하던 바울의 능력을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자신이 강론 중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났지만
당황하지 않고 죽은 자를 안아주며, 다시 살아 날 것을 확신한 그 모습에
정말 눈물이 납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바울 스데반을 죽인 사울
그 사울이 변해 바울이 되고
이제, 예전에 그 모습까지 약재료가 되어
주님의 종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사는 바울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같습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님을 그래서 지금 세상은 잠시
와서 사역을 하고 가는 곳이라는 깨닫습니다.
몇 년 전 저에게 주님을 소개하던 저의 빌립이
세상에 너무 빠져있는 저에게
이 세상이 다 가 아니라며 세상의 부와 명예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 있다며 언젠간 알게 될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 세상의 주님의 나라며
우리 목사님 말씀대로 거룩을 통해서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 하고 가는 곳이라는 것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가 UBF에 처음 갔을 때 제게 인생 요절을 만들어 보라는 그 지체의 청에 따라
당시 가장 나를 전율시킨 말씀인 요한복음 8장에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마음에 새겼습니다.
당시 제 모습은 이혼 후 완전히 망가진 삶을 살면서 그저 내 인생이 이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몰라 방황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놓지 못해 세상에 빠져 겨우 나간 교회를
떠나고 사건을 통해 다시 우리들교회 오고
목사님 댁에 가서…
기적같이 제 이혼 사실을 오픈하고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할 때..
잠시 나눔을 중단 하시고
저를 위해 찬양을 해주시고, 기도를 해주신 목사님
놀라운 건 목사님의 기도에서 내가 가슴에 새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며 제가 그 진리를 알고 그래서 자유로워 지길 바란다고 하신 기 기도는
제 머리를 해머로 내려친 듯 정신을 못 차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기도의 응답이 온 듯 합니다.
바울이 죽은 자를 안고 그의 부활을 확신한 그 힘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그 신뢰가 바울의 힘이었습니다.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고 참 많은 변화가 내 주변에 생겼지만
아직 그 부족한 제 이면에는
주님에 대한 신뢰보다는 저를 더 신뢰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제 능력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이상의 지경이
넓어지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아직도 세상을 끊지 못하고 주님 보다는 돈을 더 신뢰하며
주님 보다는 회사 지체를 더 두려워하는 모습 속에서
제 돈줄을 쥐고 있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회사라고 생각하는
제 모습 속에서 아직도 주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또 당신이 죽음에서 살아나시고
약속대로 당신의 그 능력을 당신을 믿는 제자에게도 보여주셨고
그래서 베드로가 그리 하였고
또 오늘 바울이 그 부활의 능력을 다시 증거합니다.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그 진리를 알아 가면서
제가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오늘 저는 48시간째 근무 중입니다.
오늘 새벽 3시에 집에 가서 잠시 옷 갈아 입고 씻고
잠시 눈을 부치고 온 것 외에는
여기 분당에서 새로 설치한 장비의 상태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주일에 근무 배정을 수정하기 위한 대가로
저는 작업이 진행된 목요일 오전부터 금요일을 풀로 그리고
토요일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강행군입니다.
예배를 갈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또한 제가 자처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예수쟁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회사 지체들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 있게 나는 주의 종이라고 이야기 하지 못했음 또한 고백합니다.
예수쟁이라 낙인 찍히고 싶지 않아서 임을
그것은 베드로와 바나바가 유대인을 두려워 외식한 것 같음을
봅니다.
제가 세상적인 동기를 가지고, 힘든 근무를 자처했기 때문에
그 회사 지체와 다툼이 있었고 다툼 후에도
회사에서 선임인 그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제 그 지체가 두려움이 존재가 아니라
안타까운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가 어떤 난리와 저를 비방해도
담대히 나아가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지체들 틈에 숨어서
저를 변론하고
또 함께 그를 욕하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세상의 평가와 두려움에서 자유로움을 얻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주님을 향한 절대 신뢰 믿음이 제게도 임하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