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의 주범
작성자명 [심다니엘]
댓글 0
날짜 2007.10.26
10/19(금)
행19:32-41
세상은 참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란스러운 세상, 소요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요? 에베소시의 소요사태를 묵상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 흔들린다면 결국 똑 같이 흔들림으로 똑 같은 류의 사람이 될 뿐입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흔들려 하기에 그런 줄 알고 함께 격동하면 안되겠습니다. 남을 흔들고 또 흔들림을 당하는 모든 원인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천하를 얻은 것보다도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래로 철학자들이 이마음[(心]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한국에서만도 대표적으로 원효/지눌/퇴계/율곡/다산..). 마음이 무엇인지에서 그들의 정신체계를 분석한 것을 자세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그 마음이 다름 아닌 우리 성삼위 하나님 즉 성부(신성), 성자(리성)과 성령(영성)이건만 물론 그들이 전개하는 심학의 논리는 깊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음이 참 마음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심연될 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심학(心學)은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을 우러러 바라고자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신성입니다. 정신입니다. 우리가 정신이라면 하나님은 절대정신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자 리성(理性)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도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솟아오는 약동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은 다름아닌 우리 성삼위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 우리가 이렇게 마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원래 마음으로 존재하시는 큰 한마음의 선물의 다름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를 내신 큰 한마음(一大心)이신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받들어 모셔야할 사명자들이옵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 운운하며 결국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는 저 우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오늘도 내맘을 다스리도록 道(理) 되신 우리 주 예수를 묵상할 때에 신되신 성부를 뵈옵고 또 내속에 약동하시는 성령님의 출렁거리는 은혜를 누립니다.
주여, 오늘도 내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요는 오직 우리 성삼위하나님(神性/道性/ 靈性)으로 말미암아 잠재울 수 있나이다. 아멘